Coca-Cola
총 188분 중 88분
2024
시즌 1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1화 “이브의 비망록”
'이런게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부를 수 있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저녁. 젖은 생쥐 꼴로 달려들어 온 우체부는 아버지의 실족사 소식을 내놓는다. 어지러움에 휘청이는 어머니를 붙잡아 위층으로 올려보내자 킬리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겠다고.
출연: 킬리안, 아자릭
장르: 스릴러, 드라마, 멜로
프로그램 특징: 19세기, 귀족, 형제, 가족

 

 

 

 

:
그 주에는 어째서인지 끝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저택 근처의 작은 동산마저 희미하게 보일 만큼 날은 흐렸고, 계속되는 폭우에 온 저택이 곰팡이가 슨 것처럼 눅눅했습니다.
응접실에 앉아 무료히 시간을 보내며 가지 않는 시간을 탓하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날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그저 그런 하루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늦은 오후,
젖은 생쥐 꼴로 달려들어 온 우체부가 내놓은 소식은 그의 무례를 지적할 수도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죠.
 
—경, 실족으로 사망.
 
:실족? 사망?
—경이라면... 분명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피가 섞이진 않았다지만.. 분명 가족이지요.
—경께서, 실족으로 사망. 입속으로 다시 되뇌어봅니다.
의문과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는 것도 같습니다.
당신의 곁에서 어지러움에 휘청이는 어머니를 붙잡아 위층으로 올려보내면, 굳은 얼굴로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킬리안이 보입니다.
 
:돌려진 고개가 허공을 응시하면 이번엔 오래 가라앉아 있었던, 겨우 밖으로 끌어올려진 것만 같은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당신을 향합니다.
 
장례식은 치러야 겠지.
 
우린 그의 가족이니까.
 
───────────────────
 
───── Eve’s Memorandum ─────이 브 의 비 망 록
 
2024.03.09
 
KPC 킬리안 PC 아자릭
 
───────────────────
 
:...창 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킬리안:우리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네.
적어도 네게 아버지다운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으니 말이야.
 
아자릭:...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말끝을 흐리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고 목소리를 낮춘다.)
가족이잖아.
 
킬리안:아버지를 잃은 사람인 것 치고는 너도 그리 비통해 보이지는 않는데.
...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하는 듯 입을 달싹이다 이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어머니는 어떠셔.
 
아자릭:(비통해보이지 않는다니. 상실에 눈물을 흘리기라도 했어야했던가. 언젠간 이런 순간이 찾아올거라 생각했지만 너무나 이른 시기였다.)
괜찮아. 갑작스러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으니 조금은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 같아.
형은. ...괜찮은거지.
 
킬리안:…나? (되묻는 말에 작게 실소하고는 눈가를 짓누르듯 매만진다.) 내가 괜찮냐고….
너라면 알고 있지 않나? 눈치 빠른 녀석이잖아, 넌.
그리고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도… 알았겠지. 어떤 형태로든.
 
아자릭:(ㅡ경의 실족사와 연관이 있을리가 없다. 복잡한 머릿속을 어떻게든 정리하려 고개를 가볍게 절레 내젓는다.)
정말 일말의 안타까움도?
(네게서 바라는건 인간다움일까, 혹은 가족의 유대일까.)
 
킬리안:(자꾸만 제게 파고들려는 태도에 불순 미간이 좁혀진다. 단순한 온정임을 알면서도 본능적인 방어 기제에 네 다정을 위선으로 포장해 버리고는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그게 뭐가 중요하지?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상황이 변하기라도 하는 건가?
 
아자릭:그런 말이 아니야. 나는 형이...
(부고 소식에도 중요함을 따지는 상황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넷에서 이젠 셋. 형제까지 멀어지고 싶지 않았기에 한발자국 물러서기로 했어. 내뱉으려던 말을 삼키고 말끝을 흐린다.)
...실언했어. 그저 형이 괜찮은지 묻고 싶었던 것 뿐이야. 혹시라도 충격 받았을까...하고.
(괜찮다면 다행이야. 쓴웃음을 애써 짓고 시선을 피한다.)
 
킬리안:(네가 꼬리를 말고, 저를 두려워 하길 바라고 내뱉은 칼날이 분명함에도 제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슴께가 콕콕 찔리는 것도 같았다. 불쑥 들어오는 이성적인 본심이 저를 사과하게 만들까봐, 부러 어깨를 펴고 시선을 낮춰 너를 깔보듯 했다. 제 아비가 그리하였듯.) 나에게 쓸데없는 연민따위 가지지 마.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와 너, 그리고 나의 관계가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 (무겁게 가라앉다 못해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기에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장례식은 내가 주도할테니까 넌 어머니 상태 괜찮으신지나 신경 쓰도록 해. 그게 각자의 역할이니.
 
아자릭:(쓸데없는 연민. 누가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하던가. 적어도 네게 제 진심이 닿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알겠어. 도울 게 있다면 말해줘.
적어도 아버지 장례식에는 나도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각자의 역할, 마치 선을 긋는 듯한 행동이었다.)
 
:아자릭의 말을 끝으로 킬리안은 더 이상 답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마치 제 할말은 끝났고, 말했듯이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자는 듯이요.
더 말을 걸어볼 순 있겠지만... 아자릭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아자릭:(지금 상황에서 몰아붙이고 싶진 않으니.. 어머니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러 가야겠지.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는건지 위층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에 뒤를 흘금 본다.)
 
:아자릭이 몸을 돌려 장소를 빠져 나옵니다.
고개를 돌려 넓은 응접실을 다시 돌아보면 덩그러니 남겨진 남자의 곧고 넓은 등이 보입니다.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달라지는 것 없는, 혼자 놓여져 있는 킬리안은 평소처럼 익숙한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외로워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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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수선한 사용인들을 정리하고 앓아누운 어머니를 간호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입니다.
정리한다고는 했지만... 아직 온 저택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어서, 저녁 식사는 그만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장소는 다양했지만, 휴식도 취할 겸 서재로 가도 좋겠습니다.
아자릭이 좋아하는 책들이 많이 있고, 조용하기까지 할테니까요.
 
아자릭:(조용한데도 소란스러운 하루였다고. 활기가 없는 저택 내부에서 유독 내리는 빗소리가 크게 울린다. 서재로 가는게 좋겠지.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 생각하는 장소이니. 생각을 마치면 발걸음을 옮긴다.)
 
:익숙한 발걸음을 옮겨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붉은 벽지와 짙은 고동색의 책장이 멋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이 보입니다.
킬리안의 증조부가 도서 수집에 취미가 있으셨다던가요.
3층까지 뚫어놓아 다른 방보다 훨씬 높은 천장에는 둔탁한 느낌을 주는 금빛 촛대가 대롱거리고 있습니다.
온 방을 휘감은 걸로도 모자라 천장까지 닿은 책장에 다홍빛, 암녹빛으로 반질거리는 금박 양장 도서들이 한가득 꽂혀있군요.
책장 사이사이 집안사람들의 초상화가 하나씩 걸려있습니다.
휴식을 취하기엔 더없이 좋은 공간이나 왜인지 아버지와 킬리안, 책에 관심이 많은 아자릭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잘 출입하지 않았죠.
 
:마침 킬리안도 아버지의 일로 바쁠 터이니 마주칠 걱정 없이 당신이 이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눈 앞에 몸을 뉘이기 좋아 보이는 소파가 하나 보입니다.
 
아자릭:(달칵, 문을 닫으면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기댄다.)
하아...
(그제서야 나오는 낮은 한숨. 눈을 지그시 감고 무거운 심정을 어떻게든 떨쳐내려 했어. 당장 제 형과 어머니 생각에 저를 돌볼 여유 따위도 없었다.)
 
:분명 아자릭에게는 피곤한 하루가 되었을 겁니다. 다정하지 못한 아버지였음은 확실했지만 그가 말했듯 결국은 가족이었으니까요.
주변인의 상실에 슬퍼할 여유도 없이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이제서야 찾아온 여유입니다.
소파에 앉아 몸을 늘어트리면, 어디선가 묻어 나온 향기가 후각을 자극합니다.
 
아자릭:... (향초를 피워두었던가? 서재에는 피울 이유가 없을텐데.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감았던 눈꺼풀이 올라간다. 향기의 근원지를 찾아 뉘었던 몸을 일으킨다.)
 
:향기의 근원지를 찾아 주변을 살펴보면, 탁자 위에 짙은 붉은빛이 도는 사과 한 알이 있습니다.
금속질감이 도는 것이 아무래도 사과모양 조형물인 모양입니다.
달짝지근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은 향기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네요.
탐스러운 붉은빛에 매혹적인 향을 풍기는 것이 마치 성서 속의 선악과처럼 보입니다.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누군가가 두고 간건가? 제 기억 상으로는 저런 조형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자주 드나드는 곳인 만큼, 기억에 자신이 있었다. 손을 뻗어 조형물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 관찰력 (선택)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향이 좋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보이진 않습니다. 어쩌면 전부터 존재했었지만 발견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자릭:(이상적인 사과의 모습이었다. 괜스레 표면을 쓸어내리다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둔다. 주인이 있다면 찾아가겠지. 장식으로 두었다면 제가 멋대로 가져갈 이유도 없었다.)
 
:조형물을 원래 있던 곳에 다시 돌려둡니다. 뭐, 향기가 있는 편이 책을 읽으며 휴식하기에는 좋지 않겠나요.
이왕 서재까지 온 김에 구경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탁자]와 [책장], [액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자릭:(사과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두어걸음 걷다보면 탁자 위의 물건들을 내려다본다.)
 
:푹신해 보이는 소파 옆에 자리 잡은 탁자입니다. 사과 조형물이 놓여있는 상단에는 조화가 꽂힌 화병도 하나 보입니다. 그 아래로는 3개의 서랍이 눈에 띕니다. 위 쪽부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서랍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자릭:(펜과 종이라도 있을까, 쉬는동안 필사라도 해볼 생각인지 첫번째 서랍을 살펴본다.)
 
:레터 나이프와 라이터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아자릭이 찾는 물건은 없는 것 같네요.
 
아자릭:(찾는 물건이 아니니 두 번째 서랍을 살펴본다.)
 
:작은 알사탕이 가득 들어있는 단지가 들어있습니다. 어릴 적이 생각나네요.
아자릭은 달콤한 간식을 좋아했었죠. 지금도 그런가요?
 
아자릭:(알사탕이 들어있는 단지를 확인하고 서랍을 살펴보던 손이 멈칫, 순간적으로 굳는다. 한때는 서재에 와서 사탕을 입 안에 넣고 책을 읽기도 했다. 집중을 하다보면 사탕을 굴리는 것도 까먹어, 달콤한 맛이 아릴 정도로 입 안에 퍼졌었지.)
(지금은 굳이 먹고 싶지는 않아 단지 뚜껑을 손톱으로 툭, 건들다가 세 번째 서랍을 살펴본다.)
 
:사탕은 언제든지 먹으러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굳이 손대는 사람이 없다면 넉넉하게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에도 단지 안 사탕들이 어느샌가 하나 둘 사라졌던 것 같은데... 잊혀진 기억의 착각이겠지요?
세 번째 서랍을 열어보면 파기된 이면지들 아래로 갈색 서류봉투 하나가 보입니다.
 
아자릭:...응?
(서류봉투를 꺼내들어 내용을 확인해본다. 중요한 문서라면 이곳에 둘리가 없을텐데... 혹시라도 사용인이 정리할 수도 있으니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생각했다.)
 
:서류봉투를 꺼내 살펴보면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자릭:(마침 첫 번째 서랍에 레터 나이프가 있었지. 봉투를 손에 쥔 채 나이프를 찾아 밀봉을 뜯어본다.)
 
:탁자의 서류 봉투를 레터 나이프로 열어보면, 새하얀 종이 한 장이 들어있습니다.
밀봉될 정도라면 중요한 문서가 맞겠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류 봉투 안으로 손을 집어 넣습니다.
 
킬리안:…그래. 여기 있을 것 같았지.
 
:서재 바깥에서 구두 밑창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킬리안:아버지의 것들 중 네가 가장 탐을 내던 곳이 었으니.
 
아자릭:아.
(하던 행동을 멈추고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둔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란듯했으나 상대가 너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어.)
그런게 느껴질 정도였나... 그저 난 책을 읽는게 취미이니까. 이제는 형의 것이 될 수도 있는걸.
...찾았었어? 사용인엥게 위치를 말해둘 걸 그랬나.
 
킬리안:네가 이 곳을 자주 찾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 예전부터 어린애 손이 겨우 닿는 위치의 책들만 먼지가 쌓이지 않았으니까.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그러했으니 범인은 더 분명했고.
(가까이 다가와서는 탁자 위에 놓인 서류에 시선을 흘깃 주었다가, 낚아 채듯이 집어 든다. 이 곳에 있는 것을 함부로 넘겨주진 못하겠다는 듯이.)
그래서, ...할 일은 모두 끝마쳤나?
...휴식은 좀 취했냐고 묻는 거야.
 
아자릭:아버지가 읽기에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의 책이었으니까. 이렇게 책이 많은데도 읽지 않을 수가 없어서.
(서류를 당연하게 가져가는 행동을 보고 그의 것을 몰래 보려고 들었던 것 같아 괜스레 멋쩍어졌다. 숨기고 싶은 것이야 당연히 있을테니, 제가 넘어서는건 무례할거라 생각했다.)
응. 어느정도.. 어머니 상태도 괜찮아지셨고. 저택 내 분위기도 정리되는 듯 싶어. 장례식 준비로 바빴을텐데, 형은?
(걱정해주는 걸까. 조금은 옅은 미소를 띄우고 네 물음에 저를 배제한 대답을 해준다.)
 
킬리안:(낚아챈 서류 봉투를 손 안에서 구깃거리다 열려있는 서랍에 넣고 문을 밀어 닫았다. 졸지에 열려있던 다른 서랍 안의 사탕 단지를 발견하고는 잠시동안 응시하다가 단호하게 힘주어 닫아버린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했던건 네 상태가 어떻냐는…
(살짝 짜증섞인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오자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흔들리는 동공이 제 발치를 응시하다가 지긋이 눈꺼풀을 내리 닫는다.)
바빴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아버지는 분명하게도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집 밖에서도, 안에서도. 처리할 일들이 많더군,
 
:킬리안을 살펴보면 차갑게 내려앉은 말씨와는 다르게 고개를 들어 아자릭을 쳐다보는 시선이 묘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눈을 마주하자, 어깨가 움찔 떨리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 봅니다.
 
 ✷ 아이디어 (선택) 판정 ✷ 
 
아자릭:(탁, 닫히는 소리가 다소 크게 들릴 정도로 힘주어 닫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가. 좋을 이유 따위도 없겠지만, 이전에 마주했을 때보다는 마음을 정리했을거라 여겼었다. 이 저택의 주인이 순식간에 바뀌었으니, 당신도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될까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어.)
...형?
(마주하니 이제서야 그가 시선이 흔들린다는 것을 느낀다.)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자릭은 이런 그의 모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야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온 가족이잖아요.
들키면 안 될 것이라도 들킨 것 표정,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려는 시선, 동공에 담긴 혼란스러움…
 
아자릭:왜..
(기세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너무나도 평범한 대화이지 않았던가? 혹여나 네게서 문제라도 생긴건지 네게 한 발자국 다가가 손을 뻗어 안위를 살펴보려는 행동을 한다.)
...내가 무언가 잘못한거야?
 
킬리안:(네게 가졌던 질투와 열등감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걱정에 마음이 풀어진다. 양면적인 감정에 흔들리던 시야에 네가 들어오자 예민하게 곤두선 경계심이 확 이를 드러내며 가까이 다가온 네 손등을 탁 소리나게 쳐낸다. ) 함부로 다가오지 마!
…하. 난, 그러니까… 젠장.
피곤해서 예민해졌나봐. 미안하다, 아자릭. 난 그저…
…네 얼굴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어.
 
:어쩐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아자릭:...아.
(네가 놀란 것 같아 황급히 쳐내진 손을 거두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하며 멀어진다. 덩달아 놀란건 저도 마찬가지인지 벙찐 표정을 짓고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당황스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 했어. 말투는 부드럽고 조곤조곤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형. 나는 그저 걱정되서 그런거야.
(그러니 정말 괜찮아. 나지막하게 덧붙여 말한다. 창백한 피부 덕에 조금은 붉어졌을 손등을 자연스레 뒤로 숨긴다.)
오늘 일이 많았으니 피곤할 것 같았어. ...잠들기 전에 인사하러 와준거지?
(형제니까. 애써 포장하며 네 실수를 덮는다.)
 
킬리안:...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는 소리가 혈관을 타고 머리 끝까지 울리는 듯 했다. 순간적으로 나온 제 행동에 스스로가 놀라 헛구역질을 참듯 손바닥을 입가로 가져다 꾹 누르곤 잠깐 진정하는 듯 했다. 조곤조곤 울리는 네 목소리에 점차 심장박동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고 작게 심호흡을 한 뒤 고개를 들었다.)
너야말로 피곤했을텐데, 일찍 방으로 돌아가. 내가 괜히, 너를…
(차마 마저 말을 잇지 못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발갛게 튼 네 손등을 보고는 외면하듯 완전히 몸을 돌려 서재 밖으로 서둘러 나섰다.)
(그러고는 멈칫, 잠깐 발걸음을 늦추고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좋은 꿈 꿔.
 
아자릭:(좋은 꿈 꿔. 위태로운 분위기가 끊이질 않은 탓이었을까. 평범한 인사 한마디에도 마음이 누그라진다. 오늘은 이상한 일이 많았으니까. 형 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힘든 하루였으니. 멀어지는 네가 사라질때까지 지켜본다.)
응, 내일은 내가 먼저 인사하러 갈게.
잘자, 형.
 
:킬리안이 자리를 뜨고 나면 서재 안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 분의 열기가 식고 공기가 차갑게 내려 앉습니다.
좋은 꿈 꿔, 잘 자. 평범한 인사이지만 이리 일상적으로 들어본 것이 마치 한참 오래 전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자릭에게도 바쁜 하루였죠. 슬슬 방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자릭:(서재를 나와 방으로 돌아가려다 고개를 돌려 탁자를 본다. 확인하지 못한 서류, 그것을 그대로 두고 나갔던 킬리안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호기심을 굳이 해소하려 들지는 않았다. 필사를 하겠다는 마음도 그대로 사라져버린건지 멈추던 걸음을 다시 움직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방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몸을 뉘이면 바삭하게 몸을 감싸는 시트의 감촉이 하루의 피로를 녹이는 데에 조금은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킬리안이 하던 장례식 준비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사용인들이 생각보다 일처리가 빨리 진행된다던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있는데...
노곤함에 점차 눈이 감기기 시작합니다.
...
 
.
 
───────────────────
 
.
 
:연이은 폭우로 다소 느긋하게 진행될 거란 예상과 달리, 킬리안은 빠른 속도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차피 사인은 실족사.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으니 빈 관 하나를 짜 맞춰 묻으면 그만이라고요.
어젯밤 당신이 돌아간 이후 빠르게 일을 진행한 모양입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저택의 모든 이들은 그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집안의 커튼을 검은 것으로 교체하고, 홀을 장식하던 태피스트리를 때어냅니다.
검은 칠을 한 향나무 관이 마련되었고 그 안은 시신을 대신해 아버지의 물품들과 꽃으로 가득 채웁니다.
 
:늘 피우던 상쾌한 향 대신 무겁고 매캐한 향이 가득합니다. 장례를 치를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자 폭우를 뚫고 조문객들이 하나둘 도착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추모하러 꽤 많은 이들이 참석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검은 우산 아래로 슬픈 눈을 하며 관속에 하얀 국화를 한 송이씩 던져줍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면 엄숙한 얼굴의 사제가 기도문을 읊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피로함을 느끼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자리를 옮깁니다.
숨 막히는 정적에 질식할 것 같던 기분이 나아짐을 느낍니다.
아버지의 관이 이동할 자리, 후원의 가족묘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멀리서 검은 형체가 하나 보입니다.
우산도 없이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고 있는 킬리안입니다.
 
 ✷ 관찰력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비가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보입니다.
저 물 자국 사이에 어쩌면 그의 눈물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시선을 조금 내리면... 묘하게 비틀려 웃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입술이 눈에 들어옵니다.
...웃다뇨?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자릭은 그와 아버지의 사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르려고 했더라도 십 몇 년을 함께 먹고 자고 지내온 가족이라면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죠.
기묘한 간극, 절대로 마주하지 못하던 애정의 방향들.
증오했던 아버지여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상실에는 그도 의연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요. 제가 아는 저의 형이라면 정말로 기뻐서 웃는 것은 아닐 거라는…
…무언가 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되었든 봐서는 안 될 그의 치부를 본 느낌이네요.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7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망 소식을 처음으로 듣던 그 날의 응접실에서 혼자 남겨졌던 넓은 등이, 눈 앞의 남자의 뒷모습과 겹쳐지는 것만 같습니다.
 
아자릭:(그가 웃은 것에 대해 믿는 것이 사실일지, 어떨지 자신도 확실히 답할 수 없었다. 그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가 믿고 싶은대로 믿는 것 뿐. 혼자 있을 시간을 주고 싶지만, 정말로 우산만 쥐어줄 생각으로 발소리를 죽인 채 네게 다가간다.)
(빗소리에 묻힌다고 하더라도 인기척 정도는 났을테니 말은 걸지 않고 조용히 우산을 네게 씌워주었어.)
 
:물기를 머금은 잔디가 버석대는 소리가 거센 빗소리에 묻힙니다.
저를 축축히 적시던 비가 씌워준 우산에 가로막히자 킬리안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생기 없이 탁해진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킬리안:...뭐야. 언제 왔어. 소리도 없이.
 
아자릭:비를 맞고 있어서.
(감기라도 들 수 있잖아. 조심해야지. 시선을 한 번 마주하고 신경쓰이지 않게 네가 보던 방향으로 시선을 둔다. 그저 말없이, 네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킬리안:(네 의도를 파악한 듯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않고 조용히 정면을 응시했다. 눈을 살짝 내리깔아야 보일 정도로 낮은 위치에 있는 묫자리를 가라앉은 눈으로 응시하다가 힘없이 툭 네 어깨에 체중을 실어 기댔다.)
아자릭.
 
아자릭:(이상적인 아버지가 아니었을수도 있었다. 제게도 친부의 기억이 깊게 자리 잡았더라면 너와 같은 입장으로 섰을지도, 그러지 않을수도 있었어.네가 아버지를 향해 품고 있는 감정에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섞여있을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네가 약간의 연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 그 편이 덜 아플테니.)
응, 듣고있어.
 
킬리안:...내가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해?
(너라면 알고 있잖아. 다 눈치 챘잖아. 이해를 바라는 듯한, 탁했던 눈이 다시 생기를 담으며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아자릭:... ...
(그 말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 이해를 바라는 듯한 목소리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묘를 향해 두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네게 향했어. 눈동자가 굴러가고 네가 어깨에 머리를 둔 탓에 표정은 볼 수 없었으나, 그 덕에 제가 너를 보고 있다는걸 알 수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러지 않아도 돼.
형이 혹시라도 뒤늦게 슬퍼할까봐, 그리워 할까봐 우려하는 마음이지. 나중에 아파하는게 더 힘드니까...
 
킬리안:(그러면 넌.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거야?
네게 매정하게 굴던 내 모습쯤은 나도 기억해. 네가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 걸 위선이라고 치부하던 모습도.
(차갑게 식어든 체온에 되려 열이 오르는 느낌이다. 예전부터 쌓아두었던 감정을 솔직하게 내뱉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투정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 흘끗, 제 반대쪽 어깨가 젖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젖어버린 저를 위해 우산을 씌워주는 이 모습이 제 말 그대로를 증명한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을 지었다.)
...나 하나도 슬프지 않아, 아자릭.
그래야만 할 것 같아….
 
아자릭:(제 모든 행동이 위선이라고 생각했더라도 위한다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는걸 알고 있다. 보상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닐 뿐더러, 저야말로 제가 해야되는 일을 하는 것 뿐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연했던건 너 뿐만이 아닌 저 또한 그랬던가. 그저... 너와 아버지의 관계를 알기에 제가 더 슬퍼한다면 네가 나쁘게 보일까 우려한 까닭도 있었다는걸.)
거짓처럼 느꼈다면 내가 더 노력해야겠지. 그러니 의심해도 돼. 그게 나쁜건 아니잖아.
(제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 대우에 스스로 상처입힐까 걱정되었다. 지나친 생각이라고 하지만 너는 너무나 외로워보여서. 앞으로 짊어지고 나아가야하는 등이 너무나도 무거워보였다. 네 머리에 저도 고개를 기울여 묻고 낮게 말한다.)
... ...응.
슬퍼하는 사람이 많으니, 슬퍼하지 않아도 모를거야.
(그들 또한 진정성 있게 슬퍼할지는 모르겠지만. 때마침 내리는 비 덕에 가릴 수 있지 않은가.)
 
킬리안:(웃기지도 않아. 더 노력해야겠다고?
짧은 시간도 아닌 십 몇 년을 저와 같은 집에서 자고 깨며 지내온 순간들을 제 입으로 모두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해도 된다거나 나쁜게 아니라는 말 따위를 뱉을 수 있다니. 어머니의 핏줄로서 사랑받고 자라온 너를 질투했다. 저 또한 핏줄에게 사랑받는 자식이 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 되었더라면 넌 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 대신 저도 그렇지 않다는 이해의 말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니, 너는 어떤 환경에 놓여 있어도 다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저는 절대로 너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겠다고.
그러니까, 나는 너처럼 되고 싶었다.)
...하아. (인정하고 나니 끓어오르던 속이 찬물을 끼얹은 것 처럼 편안해진 기분이다. 빗물 사이로 하얗게 피어오른 입김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너 또한 이미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워진 거리, 추운 공기 속에 유일하게 맞닿는 따뜻한 숨결. 이해받진 못했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에 작게 중얼거린다.)
 
킬리안:그래. ...난 슬퍼하지 않을 거야. 이건 네가 비밀로 해줘야 돼.
 
아자릭:(오늘의 일은 비밀로 그칠 것이다.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너 또한 잘 알겠지. 가족의 일을 쉽게 꺼낼 인물도 아닐 뿐더러, 존중하는 의미로 네가 아버지를 증오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묵인할테지. 적어도 세상의 단 두명에게 만큼은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초라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너 또한 그 수순을 밟은 것이고, 그 순간을 모르는 척 하는거라고. 네게 기울어진 우산을 손에 쥐어주며 고개를 끄덕였어. 비를 얼마나 맞고 있었는지, 차갑기 짝이 없었다.)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니, 비밀이 풀린다면 누굴 원망할지는 잘 알 수 있겠네.
(답지않게 장난이 섞였으나, 원망할 상대가 없다면 저를 탓하라는 의미도 담겨있었어.)
비밀 지킬게. 약속.
 
킬리안:(한참 비를 맞아 차가워진 네 손이 제 손에 들고있던 우산을 쥐여준다. 문득 지난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걱정을 담고 뻗어오던 손. 닿기도 전에 쳐냈던, 하얀 피부 위로 발갛게 쓸린 자국이 올라오던.... 지금이라면 그 손을 맞잡고, 끌어 당기고, 그리고... ... ... )
(쥐여준 우산을 뿌리치듯 옆으로 떨궈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거칠었던 행동은 어디가고, 조심스레 네 손을 잡아 제 입술로 끌어와선 속죄하듯 깊게 손등에 입을 맞췄다. 깊게 가라앉아 있던 눈꺼풀이 점차 고개를 들어 널 마주했다. 약속이라는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새끼 손가락을 가져다 네 새끼 손가락에 깍지를 끼듯 얽었다. )
원망할거야. 정말로. 그러니까 실망시키면 안 돼.
(비어있는 무덤에서는 눈을 돌린지 오래다. 남은 잔여물마저 털어 내겠다는 듯 시선을 주고 있는 곳이 분명하다. 이제는 제 울타리를 무너트려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안다. 내 곁에 남은 것은 오로지…)
 
:펼쳐진 검은 우산이 잔디밭에 덩그러니 굴러 다닙니다. 누군가를 위했던 마음이 담겨있던 물건이지만, 홀로 버려진 모습이 그리 썩 외로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킬리안은 깊은 욕망 따위가 담겨있는 듯한 짙은 눈으로 아자릭을 한참 응시하다가, 떨어진 우산을 줍지도 않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납니다.
그 뒷모습이 이전과 같은 토라짐이나 투정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똑같이 보인 넓은 등이 어쩐지 외로워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저택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검은 점이 되어갈 무렵, 멀리서 종소리가 두어 번 들려옵니다.
...장례가 곧 끝날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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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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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마치고 손님들을 배웅하자 어느덧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사용인들은 평소보다 일찍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고, 저택은 고요하기 그지없습니다.
장례 내내 퍼붓던 비는 여전합니다.
장례를 일찍 치른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내일 아침이면 저택으로 오는 길이 침수될 것입니다.
고단한 하루였으니 슬슬 잠자리에 들도록 할까요.
 
:죽은 자에게는 내일이 없다지만, 당신은 이다지도 분명하게 살아있으니까요.
...
아자릭이 방으로 들어가 잠에 들 준비를 하면, 어째서인지 오늘밤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무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룬 하루였음에도, 이상하죠.
혹은 낮에 있었던 어떠한 일 때문에 신경쓰이는 점이 있었을지도요.
고요한 가운데 멀리서 천둥소리와 빗소리가 들려오고. 째깍, 째깍, 시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똑똑.
 
:적막을 깨트리며 두꺼운 나무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아자릭.
 
:아자릭이 잘 알고 있는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자릭:(이 시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제가 깨어있어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문 앞에 세워둘 뻔 했었어. 아직 꺼두지 않은 촛불을 들어 탁자 위에 올려두고 문 앞에 섰다.)
... 형?
 
:아자릭이 익숙한 호칭을 불러보지만, 그 뒤로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기타 판정 가능합니다. (듣기 등 ...제시도 가능)
 
아자릭:(제가 잘못 들은건가. 혹시 몰라 기척을 살펴보고 소리를 주의깊게 들어본다.)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 듣기 판정 ✷ 
 
:문가에 귀를 대어보면, 견고하지만 세월감이 느껴지는 낡은 문 뒤로 얕은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숨이 조금 가쁜 것도 같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자릭:(밤 늦게 저를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제가 맞다면 네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했어. 문고리를 천천히 돌려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아자릭이 문을 열어주면, 어쩐지 질린듯한 낯빛의 킬리안이 잠옷 차림으로 서 있습니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이쪽을 응시하는 눈빛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폈다가, 저를 노려보다가, 또 다시 풀어진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킬리안:...큼, 자는데 깨운건 아니지?
 
아자릭:아니, 잠들지는 않고 있었어.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낯빛이 안좋아보여. 걱정스러운 말과 잠옷 차림으로 네가 돌아다닌게 흔하진 않았으니 누가 볼까, 방 안으로 들인다. 문을 열어주고 들어오라는 듯이 길을 내어주었어.)
 
킬리안:그냥, 오늘따라 잠이 오질 않아서... (제 앞으로 길을 터주자 만족스러운 듯 살짝 입꼬리를 당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땠다. 성큼 넓은 보폭으로 안에 들어서서는 몸을 돌려 너를 마주했다.) 아자릭, 그러는 넌?
 
아자릭:(네가 들어오자 달칵, 소리를 내며 문을 조용히 닫는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채로 네가 하는 말에 대답했다.)
나도 잠이 오질 않아서. 잠들길 기다리고 있었어.
아무래도 생각이 조금 많았나봐. 그게 아니라면 몸이 아직 덜 피곤했을지도 모르지.
 
킬리안:(문이 닫히는 소리에 시선을 옮겨 네 손이 놓여진 문고리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다시 성큼, 네 쪽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
(조금만 더 가깝게 다가서면 껴안을 수도 있을 거리. 두 몸체 사이에 한 걸음 정도를 두고 멈춰서고는 오른팔을 뻗어 네 손등을 제 손바닥으로 감싸 쥐어 덮었다.) ...아니면 다른? (감싸쥔 손에 힘을 주자 철컥, 잠금쇠가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자릭:(아버지의 마지막 순간? 의문스럽기는 했었다. 급작스러운 실족사, 그것도 한 저택의 주인이 절벽에서 발을 헛딛다니. 당장의 장례식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는건 인정했어. 다만 제가 밤을 설친 이유는 다른 생각 때문이었다.)
(생각이 조금 길어지니 문고리에 손을 겹쳐 온기가 느껴졌어. 그제서야 조금 의아한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낮과 분위기가 다른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손을 내치지 않았나.)
실없는 생각이지. 괜히 고민만 더 늘어놓고 싶지도 않고.
(잠금쇠가 걸리는 소리가 들리면 시선이 손으로 향한다.)
그보다 형. ...괜찮은거 맞지?
 
킬리안:(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길어지는 정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집스럽게 미간을 좁히다가 이내 저와 마주한 시선에 금방 또 인상을 폈다. 잠금쇠가 걸린 것을 슬쩍 확인하고는 아쉬운 듯 포갰던 손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나도 의아한 일이라고는 생각해. 하지만 이미 떠나보낸 사람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봤자 우리를 좀먹을 뿐이지.
(그러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되려 반문한다. 제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 왜?
 
아자릭:...그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앞으로의 생각을 더 해야겠지.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당장 네 짐이 더 클테니 제가 걱정을 해봤자 도움이 될 수 있는게 없었어. 제 걱정에 되려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자 덩달아 저도 멍하니 시선을 교차한다.)
...아니. 분위기가 이전같지 않아서.
오래 머물어도 상관은 없지만 서 있지 말고 앉아.
(제 방에 들인 손님을 세워둘 수는 없지. 따지자면 네가 저택의 주인이 되겠지만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테이블이 있는 소파를 눈짓한다.)
 
킬리안:...분위기라. (네 말에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네가 가리킨 소파를 바라본다. 그것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어 버리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죄도 없는 소파를 탓하듯 흘겨보다가 시선을 옮겨 네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오래 머물러도 된다는 건 얼마나를 뜻하는 거지?
(정말로 몰라서 물은 말이 아니었음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물음인지를 너라면 깨달을 것이다. 너라면 나를… 나의 속내를 알아봐 줄 것이니까.)
 
아자릭:원한다면 자고 가도 돼.
(한 번도 그런적은 없었지만. 어릴 때 조차도 함께 잠들지 않았었지. 그정도로 서먹한 사이었나 싶지만 함께 잠드는 편이 오히려 유별난거일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행동이 달라졌으나, 네가 직접 제 방에 찾아와 있고 싶다고 말하니. 조금은 관계가 가까워졌단 희망이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비워줄 수 있고. 혼자 자는게 편하지 않아?
 
킬리안:아니. (비워준다는 말에 단호한 목소리로 네 말을 끊어냈다.) 내 방 잠자리가 불편해서가 아냐.
...네가 필요해서.
(고개를 돌려 탁자 위에 올려진 가족 초상화를 본다. 제 방의 탁자에는 없는 그 초상화. 네 명이 서 있는 단란한 가족의 초상화에서 지금은 없는 한 사람을 무심코 응시하다 중얼거림에 가깝게 말을 이었다.) 나도 외로울 줄 아니까...
 
아자릭:...
(분명 듣고 싶은 말이었을텐데. 오히려 네가 많이 힘든 상태인가 싶었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평판을 신경쓰는 너라면 당연히 자고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텐데. 아무리 형제라지만,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제 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을거라고. 평소의 너라면 여기까지 우려했을거란 생각을 했다.)
형.
(외로울 줄 아니까. 그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반사적으로 네 손을 잡고 생각을 끊어냈어.)
슬퍼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렇지?
형이 외롭다면 언제든 와도 괜찮아. 그러니까, 오늘은 곁에 있을게.
 
킬리안:(제 손에 덥썩 조여드는 압박감에 흐릿했던 시야를 붙잡고 너를 돌아본다. 슬퍼하지 않기로 했지 않냐고 말하는 그 표정이 저의 외로움보다 아파 보여서, 저를 염려하는 모양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묻어나서...) ...그래. 슬퍼하지 않기로 했었지.
(그 일로는 더이상 슬프지 않았다. 어떠한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초상화에서 아버지를 먼저 찾은 것은 평생에 걸친 습관이었을 뿐, 그 다음으로 눈길을 준 것은 다른 사람이었음을 너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많이 컸어. 그런 말로 위로할 줄도 알고. ...아, 그냥 내가 몰라봤던 탓인가. (멋쩍게 웃으며 농담하는 것이 이때까지 보이지 않은 유한 분위기임을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다. 잡은 손을 제 쪽으로 당겨서는 가볍게 너를 품에 안았다. 저와 키가 같아진 것은 진작에야 눈치 챘지만, 직접 맞닿아본 육체는 여엇한 어른의 것이었다.)
 
아자릭:(생각을 잘라내려 했던 행동이 바른 행동이었는지 슬퍼하지 않겠단 말에 약간의 안심을 했다. 이번 장례식을 끝으로 네 시선 끝에 있었던 아버지는 이제 묻어두자고. 더이상 슬프지 말자고 빗속에서 약속처럼 꺼낸 말을 상기시킨다.)
... ....
(갑작스레 끌어안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손을 올리지 못했으나, 그리 길지 않게 네 등을 감싼다. 맞닿은 가슴이 들썩거리며 호흡을 하는 것도,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모두 전해져 눈을 느릿 감았다 떴어. 짧은 포옹이라지만 어머니가 아닌 처음으로 느껴본 가족의 품이라 괜스레 마음이 약해진 이유도 있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이제는 형도, 나도 다 커버렸다는걸 알잖아. ... 위로가 필요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너무 혼자 감당하지는 마.
(짧은 포옹을 마치고 이제 괜찮아졌기를 바라며 떨어진다. 옅은 미소를 짓고는 네 어깨를 두어번 토닥였어.)
 
킬리안:(모두가 잠든 밤, 조용한 방 안에서 울리는 조곤조곤한 네 목소리가 제 귓가에 맴돈다. 따뜻하게 감싸오는 체온, 기분 좋은 적당한 압박감이 분명 자신이 바래왔던 애정 깊은 가족의 형태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다른 열망이 피어오르는 것이 조금씩 느껴졌다. 나의 가족, 나의 형제. 갈구하지 않아도 대가 없이 안겨지는 애정. 모든것이 완벽했음에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갈증이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진 곳에는 네 하얀 목덜미가 있다.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 (네가 몸을 떨어트려고 하자 본능적으로 팔에 힘을 주었다가, 이내 아쉬운 듯 입술을 깨물고는 힘을 풀었다.) 네가 있는데 이제 내가 뭐가 두렵겠어.
 
아자릭:(붙잡힌 팔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으면 그곳에 시선을 두다 너를 바라본다. 금방 다시 풀어내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을 모를리가 없었다.)
...낯부끄러운 소리 하지는 말고. 그래도 위로가 되었다면 다행이야.
(다소 분위기가 풀어지자 장난을 받아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어. 입꼬리를 당겨 웃으면 보조개가 보였어. 부고 소식에 이어 웃을 일이 없었기에 이리 환히 웃어보는건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노력해야겠지. 너무 늦은 시간이니까.
(이리 와. 네게 손을 내밀며 잡으라는 듯이 보인다. 멋대로 손을 대는걸 싫어할까 조심스레 시선을 주었어. 이전에 무례를 저질렀으니 이번에는 배려할 생각이었다.)
 
킬리안:(이전의 날을 세운 경계심은 더 이상 너에게는 향하지 않았다. 제게 보여주는 그 세심한 배려가 썩 좋아서 허락한다는 듯이 제 손 위로 제 손을 가볍게 포개었다. 새삼스럽게도 모든 것이 처음인 이 순간들이 어처구니가 없어 작게 웃는 소리를 낸다.)
우습지. 이 나이가 먹도록 같이 자는 것도, 포옹을 하는 것도, 손을 잡는 것도 다 처음이라니.
(나는 널 얼마나 미워했던 걸까. 그렇다면 너는 얼마나 긴 시간을 미움받으며 살아왔던 걸까. 무감해진줄로만 알았던 양심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라, 외면하듯 빠른 걸음으로 침대에 다가선다. 구겨진 시트 자락에서 너의 생활감이 묻어나 이 곳에 제 몸을 뉘일 생각에 괜시리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잠들려는 노력은 했었나 봐.
 
아자릭:시간은 많으니, 앞으로 못했던걸 채우면 되는거지. 다 큰 어른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이상하게 보이려나?
(단순히 우애가 좋게 보일 시기는 지났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그게 뭐가 중요할까. 당장의 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인데도. 저 또한 너와 있을 때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괜스레 들었어. 지켜만 보던 대상이 저를 바라봐 주었으니.)
으음.. 노력은 해봤지만 잘 되지는 않아서. 형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또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냈겠지.
(내가 자주 하던 것들 말이야. 너는 모르겠지만 취미로 하고 있는 독서나, 필사를 의미하는 뜻이었다. 이불을 걷어 뉘이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촛불을 가져와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둔다. 그리곤 자연스레 네 옆자리에 앉았어.)
아침에 사용인들이 놀라겠어.
...형은 괜찮겠어?
 
킬리안:이상하게 보이는게 뭐 어떻다고. 그래봤자 타인이잖아.
(제가 이런 말을 하는게 우습기도 했다. 그야 그 타인의 시선을 누구보다 신경 쓰던 것은 저였으니까. 이상하지, 그 생각에 지금까지도 변함은 없다. 오로지 너만을 제외하고는. 이 사람만은 제 편이라고, 저의 가족이자 저의 소유라고. 그렇게 묶어둘 수 있다면 증명하겠다는 비릿한 의지가 솟아 올랐다.)
진작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놓쳤던 거라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난.
(또 타인부터 걱정하는 그 말. 신경이 거슬리기도 했지만 지금 단 둘이 있는 이 순간이 꽤 흡족스러웠기에 너그러이 넘어가주기로 한다. 지금은 네가 알려준 너의 취미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 따위에 대해서 듣는 것이 더 좋았으니까. 가볍지 않은 무게에 침대가 요동치자 이불을 허리까지 끌어 올려 덮고는 한 쪽 팔로 턱을 괴고 널 올려다 봤다.)
어떤게 괜찮겠냐고 묻는 걸까.
 
아자릭:(그가 아버지를 의식해 주변의 평판을 신경쓰지 않았던가. 소위 아버지가 밟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것처럼. 인정받으려 했던 욕구를 언뜻 본 것 같지만 이것은 입에 담지 않기로 했다. 저를 올려다보는 너를 반쯤 몸을 돌린채로 내려다보았지. 섣부른 생각이겠지만, 그만큼 걱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니.)
혹시라도 오해할까, 하는 마음이었어. 소문은 쉽게 퍼지고.. 그만큼 힘을 얻기도 하잖아.
(실제로 제 귀에 들려오는 추문의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들이었다고. 너 또한 알 것이라 여겼다.)
... ...
너무 엇나간 생각이라는 거 알아. 걱정이 많아서 그런가봐.
(제가 너를 깎아내릴까 걱정했던 것이 지나친 우려였다고. 그런 생각이 들때쯤 찬물을 맞은 듯, 순식간에 창피함이 몰려온다. 네가 저를 우습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변명을 하고 침대 위에 반쯤 누웠어.)
 
킬리안:뭐? (괜찮겠냐는 물음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저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불쑥 솟아오른 심술에 네 입으로 직접 말하도록 했던 짓궃은 장난에 가까울 뿐이었지. 혼자 대답하고 혼자 부끄러워 하는 귀여운 짓을 할 줄은 몰랐다는 거다. 거의 누운 듯 반쯤 기대선 제게 등을 보이는 모양새가 너무나도 동생 답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저도 모르게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유쾌하게 웃어버렸다.) 아하하… 바보같아.
(생각이 많아져 스스로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던 네 얼굴을 떠올린다. 무엇을 걱정하는 지는 뻔히 알겠지만, 이제 제 아비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작고 여린 꼬마아이는 여기 없다고. 그 꼬마아이를 만들어 낸 공포가 바로 오늘, 땅 아래 깊숙히 묻혔다고. 내가 이해받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아자릭. 나는…)
…그러고 잘 거야? (뒤돌아 누운 네 등에 뺨을 가볍게 기대고 팔을 뻗어 허리를 끌어 안아 당겼다. 오늘은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날이니까, 그런 변명을 속으로 되내이며 입 밖으로는 다른 말을 중얼거린다.) 나 오늘 외롭다고 말했어.
 
아자릭:(등 뒤로 웃음 소리가 들리면 괜히 눈을 감았다. 변명해보았자, 제가 들을 소리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 혹시라도 불쾌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너도, 저도. 함께 안온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신기할 다름이었어.)
(등 뒤에 느껴지는 온기, 그리고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면 이어지는 네 목소리가 조금은 신경쓰여서. 네 팔을 잡고 몸을 돌려 감싸 안는다. 그래, 아마 저는 네게 아버지 만큼의 존재가 나타날때까지 신경쓰이게 될거라고. 그게 가족이라 생각하며 네 머리를 매만진다.)
...응, 이러고 있을게.
(네가 약한 소리를 한다면 당연히 저는 네게 갈 것이다. 먼저 저버리지 않는 한, 너를 우선시 여기겠지. 제 형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여서... 생각이 길어지면 눈을 지그시 감는다.)
 
킬리안:(그러고 보면 제게도 정말 낯선 경험이다. 타인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는 순간이 온다는게. 맞닿는 것이 불쾌할 것이라고 여겼던 살갗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따뜻했고, 제 머리카락을 헤집는 손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기는 커녕 마음을 안정시켰다. 먼 기억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는 제 친어머니의 모습이 두루뭉술하게 떠오른다. 불현듯 의미를 모를 자존감이 피어올라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내걸었다. 그러니까 저도 사랑받던 시절이 존재하기는 했노라고. 그리고 그런 때가 있었음을 깨닿게 해준 제 동생, 어느새 자란 남자의 품에서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닫았다.)
도망치면 안 돼, 내일 아침까지 이러고 있는 거야.
(...누군가가 이 광경을 목격하더라도. 그 말만은 목 뒤로 꾹 삼켰다. 네가 두려워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아자릭, 이 어리숙하고 바보같은 녀석.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일이야. 우리의 명예가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어떠한 연고도 남지 못하고 고립되더라도, 오직 우리 둘 만이 건재하다면. 서로의 유일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아자릭:(머리를 매만지던 손길은 점차 느려졌고 귓가에 들리는 네 말에 대답보다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껴안은 손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처음 너와 인사를 한 순간부터 마주하는 방법을 배우고, 도망치는 방법 따위는 배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깝게 몸을 붙이고 있지만, 불안하다는 듯이 재차 제게 확인하는 네가 안심하고 잠들길. 그리고 떠나지 않을 거라는 진심이 전해지길.)
(아침이 밝는다면 이전과 다르게 하루가 시작 될 것이다. 달라진 나날이 당신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어둠이 얕게 깔린 방 안, 숨결이 흐트러지는 소리만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타인이, 아니. 저의 가족이 제 품에서 잠들어있다는 점일 겁니다.
이전까지와 다른 외롭지 않은 날들이 내일부터는 계속될 것이라고 되내이면서, 아자릭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합니다.
이제는 찾아올 아침이 걱정되지 않아요.
우리에겐 가족이 있잖아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
 
───────────────────
 
.
 
:...종일 비가 내려서일까요, 오전 시각이 분명함에도 온 저택이 음울하기 그지 없습니다.
볕이라도 들면 좋을 텐데 하늘은 맑아질 기색이 없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아자릭의 상태는 좀 어떤가요? 푹 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아직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아자릭의 옆에는 아직까지 곤히 잠들어있는 저의 형이 보입니다. 분명 새벽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었던 것 같은데, 낯설게도 오전까지 잠들어 있는 모습니다.
 
아자릭:(평소와 다를 것 없는 환경이지만 편안하게 잤다는 마음이 중요했던건지 컨디션은 좋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거지? 바깥은 소란스러운건가. 정신이 어느정도 개이면 이대로 더 잘 생각은 없는지 네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이 상체를 일으켜본다.)
 
:잠들어 있는 그를 깨우지 않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봅니다. 평소와 같은, 특별할 것 없는 오전의 풍경이지만 뭔가... 어제와 다른 점이 하나 있지 않나요?
 
 ✷ 관찰력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정신과는 별개로 아직 비몽사몽한가. 눈꺼풀이 무거운지 가볍게 비비고 초점을 잡는다.)
 
 ✷ 관찰력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기는 한데, 잠이 덜 깨서 그런 것인지 어제 방 안을 둘러볼 여유는 없었기 때문인지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짚어내긴 어려웠습니다.
바깥의 폭우가 쏟아지며 창문을 때리는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으면, 복도에서 사용인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에 똑똑,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 관찰력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그러고보니 어제 형이 문을 잠궜다는 것을 깨닫고 탄식을 흘린다. 문을 살짝 열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어.)
...무슨 일이지?
 
사용인:아침 식사가 준비 되었습니다. 주인 마님이 아래층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도련님께서 보이지 않으시더군요. 혹시... (하며 흘끗 안쪽을 보려 한다.)
 
아자릭:(시선이 향하는 것을 알고 문을 짚으며 교묘하게 시야를 가린다.)
형님께는 내가 전달할테니 어머니께 바로 간다 일러주겠어? 길게 걸리진 않을거야.
(전달했으면 돌아가도 좋아. 부드럽게 웃어보인다.)
 
사용인:아... (제 시야가 모시는 주인의 몸으로 가려지자 그제서야 제 무례를 깨닫고는 황급히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잠깐의 시야에 어떤 인영이 들어왔던 것 같긴 하지만... 본 것이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뜬다.)
예, 지금 내려가서 전달드리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사용인이 도망치듯 자리를 뜨자, 복도에는 창 밖을 두드리는 빗소리만이 매워집니다.
일러둔 말이 있어 바로 식당으로 내려가지 않고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겠네요.
 
아자릭:(조금 더 자게 두어야하나. 깨어날 시간인데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문을 닫고 고민을 잠시 한다. 형이 입을 옷을 준비해두어야 할까...)
(여유는 있다고는 하지만 제 형이 준비할 시간이 모자랄 거라 생각했다.)
 
:원한다면 킬리안의 방으로 가서 그가 즐겨입는 옷가지 몇 벌을 가져올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타인의 시선과 불순한 추문을 신경쓴다면 누군가에게 들키지는 않는 편이 좋겠네요.
 
아자릭:(조심스레 복도로 나가 사용인이 돌아다니는지 확인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발걸음을 최대한 느리게 걸어 킬리안의 방에 들어가기까지 조심스레 행동했다.)
 
:분명 제 형의 방은 같은 층의 복도 끝에 위치하고 있었죠. 다행히도 그리 멀지는 않은 곳입니다.
앞으로 펼쳐진 복도를 쭉 따라가다 보면 왼쪽 벽으로 막힌 코너가 하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코너 안쪽으로 사용인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는 것을 듣자니 곧 마주칠 것 같은데...
 
 ✷ 은밀행동 판정 ✷ 
 
아자릭:
은밀행동
기준치: 40/20/8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바로 옆에 세워진 청소 도구들이 마침 몸을 숨기기 딱 적합했는데 말입니다, 가깝게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한 아자릭이 몸을 숨길 타이밍을 놓치자 코너에서 돌아나온 사용인들이 그런 모습을 발견합니다.
 
사용인:어머, 도련님. 이 쪽은 큰 도련님의 침실 밖에는 있지 않은데... 혹시 무슨 볼일이라도...
 
아자릭:형님께서 찾으시는 물건이 있어서.
부탁을 받아 형님의 방에 가려던 참이었어.
(괜찮다면 먼저 자리를 떠도 괜찮나?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거든. 양해를 부탁한다는 표정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사용인:어... 그러니까, 큰 도련님이 작은 도련님을 방에 들이셨다구요?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슬쩍 눈빛을 교환하다가, 이런 행동이 혼이 날 수도 있겠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는 저들의 발치로 눈을 내리깝니다.
 
사용인:사실 저희도 얼마 전에 청소를 하러 들어갔다가, 물건을 마음대로 헤집어 놓지 말라고 한 소리를 들었던 참이거든요.
헤집어 놨다기엔 정리정돈을 한 것 뿐이었지만...
그런 것들만 조심하시면 될거에요. 주, 주제 넘지만... 큰 도련님이 이런 데에 유독 예민하시니까. 저희는 걱정이 되어서...
 
:얘, 무슨 그런 말까지 하니. 옆의 사용인이 작게 소곤거리고는 꾸벅 고개를 조아린 채 우르르 복도 끝으로 빠져 나갑니다.
그런데 두 분, 그렇게 사이 좋은 편은 아니지 않았어? 부탁까지야 그럴 수 있다지만...
침실에 누구 들이는거 싫어하시잖아.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져가다 결국은 잦아들면 이젠 바깥에 우충충하게 내리는 빗소리밖엔 들리지 않습니다.
 
아자릭:(... ... 형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제멋대로 다루는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보다 문제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질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저 기우였으면 좋겠다며 네 방 안에 들어갔어.)
 
:당신은 천천히 그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가족이 되고서도 한 번도 가지 않은 공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두근거림이 당신을 감쌉니다.
주인 없는 주인의 방이라니, 어쩐지 허락받지 않았다는 기분에 양심이 찔릴지도 모르겠어요.
혹은 이런 모습조차 누군가에게 띄기라도 한다면 정말로 우려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을지도요.
그의 방에 들어서면, 킬리안을 닮아 강박적이면서도 정갈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책장]과 [침대], [탁자]가 보입니다.
 
아자릭:(제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제가 자신의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흔적만 남기지 않는다면 되겠지. 적어도... 보기만 하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형이 알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으나, 닿고 싶었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했다. 가장 먼저 책장을 살펴본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가득 꽂혀있습니다.
 
 ✷ 관찰력 판정 ✷ 
 
아자릭:(형이 어떤 서적을 좋아할지 전혀 몰랐다. 살아온 세월이 길다고는 하지만, 사소한 취미 정도도 모를 정도였다. 고개를 들어 책들을 살펴봤어.)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전체적으로 깔끔한 책장 한편, 최근에 읽던 것들인지 이리저리 두서없이 쌓아진 책들이 보입니다. 정리정돈이 습관화된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네요.
윤리와 도덕에 관한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 따위도 보여요.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1d2 굴려주세요!
 
아자릭:1
 
:쌓여있는 다양한 책들을 보니 그가 평소에 책을 많이 읽음을 새삼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책들을 전부 읽어본 걸까요?
서재에서 가져온 책도 몇 권 껴있는 것 같습니다. 아자릭이 읽었었던 것들도 눈에 띄네요.
그 외에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자릭:(그가 관심있어하는 서적의 종류는 평범했다. 기본서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 책이었지. 기회가 된다면 빌려달라고 말 한 번 정도는 꺼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침대 쪽으로 향한다.)
 
:검은 이불과 베개가 단정히 정리된 침대입니다. 별달리 특별한 점을 확인할 순 없지만, 침대에 눕거나 앉아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자릭:(주인 없는 방에 들어왔을 뿐더러, 마음대로 침대에 앉을 순 없지. 탁자에 눈길을 둔다.)
 
:2단 서랍이 눈에 들어오는 탁자입니다. 꽃 없이 물만 들어있는 화병이 보입니다.
 
아자릭:꽃을 교체하는걸 깜빡했나..?
(물만 들어있는 화병을 보고 의아한 눈빛을 했다. 특별히 찾는 것은 없지만 그저 본능적으로 서랍을 살펴봤다.)
 
:서랍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 2층 어느 서랍부터 살펴볼까요?
 
아자릭:(1층 서랍을 열어본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서랍입니다.
 
아자릭:(깔끔히 비워져있네. 2층 서랍을 살펴본다.)
 
:뒤집힌 액자 하나가 보입니다.
 
아자릭:... (멋대로 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그럼에도 손을 뻗어 사진이 보이지 않는 액자를 꺼내든다.)
 
:꺼내보면, 한 가족의 초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상화 속에는 지금보다 젊어 보이는 익숙한 어른 남성, 그리고 갓난 아이를 안고 있는,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을 묘하게 닮은 한 여성이 서 있습니다.
 
아자릭:(... 사진 속의 여성을 보고 제 형을 떠올렸다. 역시 그리울까? 하나 뿐인 사진을 마치 숨겨둔 것처럼 보관했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이상적인 가족처럼 보이기도 해서 사진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원래 있던대로 돌려둔다.)
이럴게 아니었지.
(형에게 비밀을 만들 것 같아 괜스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본래 이 방에 들어온 이유를 떠올리며 생각을 끊어낸다. 그가 입을만한 옷이라면 옷장에 있겠지?)
 
:그의 방을 대충 둘러보고 나면 탁자 오른쪽 벽면으로 드레스룸이 보입니다.
양쪽으로 나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자릭:(문을 밀어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지 않았으면 하는데...)
 
:드레스룸에는 아자릭의 옷장과는 사뭇 다른, 중후한 듯 화려한 복식의 옷가지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프릴이 달린 포엣 셔츠부터 짙은 갈색빛이 우아한 쓰리 피스 수트, 은은한 무광이 고급스러운 맞춤 구두부터 화려한 빛의 보석들이 박힌 타이핀, 커프스 버튼 같은 장신구들까지.
여기서 적당한 옷을 몇 벌 골라 그에게로 가져가면 될 것 같아요.
 
아자릭:(그의 일정은 모르겠으나, 식사 정도면 간단한 복식이 괜찮지 않을까. 얼떨결에 형의 옷을 골라주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중간에 환복할 여유 정도는 있을테니 단정하고 격식을 너무 차리지 않는 옷으로 골라 품에 든다.)
이거면 되겠지.
 
:적당히 필요한 것들을 챙겨 방을 나서면, 아까와는 달리 조용한 복도입니다.
사용인들과 또 다시 맞닥뜨리기 전에 빠르게 움직이는게 좋지 않을까요?
 
아자릭:(또 괜한 오해를 쌓을 것 같으니 빠르게 제 방으로 돌아간다.)
 
:아자릭이 제 방 근처까지 다다르면, 청소를 하기 위해서인지 문 앞에서 제 주인을 기다리는 사용인 한 명이 보입니다.
그의 옷가지를 든 채로 마주치면 곤란하니, 벽면으로 붙어 숨을 죽이고 있으면 금방 떠나 갈 거예요.
 
 ✷ 은밀행동 판정 ✷ 
 
아자릭:
은밀행동
기준치: 40/20/8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발소리가 안나게 벽면으로 붙어 잠시 대기한다. 들키면 곤란해질 상황이 뻔히 그려졌어.)
 
:저 사용인이 이 곳 복도를 막 청소한 직후였나봅니다.
미처 다 날아가지 못한 공기중의 먼지가 아자릭의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재채기를 정신력으로 참아냅니다.
한참을 기웃거리며 주인을 기다리던 사용인은 한 두 번 더 노크를 하다가,
이내 방 안에 사람이 없을 것임을 깨닫고 트레이를 끌며 복도 끝으로 사라집니다.
주변에 더 사람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자릭:... 하아.
(너무 긴장한 탓에 호흡을 참았던가. 한숨을 작게 내쉬고 주변을 경계하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으로 돌아오면 이제 막 잠이 깬 모양인지 시트 자락을 끌어 안고는 얼굴을 묻은 채 낮게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킬리안이 보입니다.
 
킬리안:...어디 다녀왔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 올려 겨우 말을 꺼내고는 작게 하품했다.)
 
아자릭:아, 깨었구나.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어.
어머니와 식사하러 바로 내려가야 될 것 같아서. 그 차림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테이블 위에 옷을 내려두고 옅게 미소짓는다.)
 
킬리안:무슨 차림... ...아. (어제 잠옷 바람으로 찾아왔었지. 그제서야 제 복장을 내려다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침대에 누운 채로 느른히 몸을 폈다.) 직접 가지고 온거야? ...내 방에서?
 
아자릭:옷만 가지고 나왔어. 허락없이 들어간건 미안해.
(어떤 말을 해도 네 방에 들어갔단 사실은 숨길 수 없었구나. 뒤늦게 깨닫고는 눈썹을 늘어뜨린채 미안한 눈빛을 한다. 침대로 다가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지.)
다음에는 조심할게.
 
킬리안:(사과하는 네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걸터 앉은 네 옆으로 몸을 끌어 온다.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네 팔에 제 이마를 툭 기댄다. 내리깔아 슬며시 감은 눈 아래로 시트에 묻힌 입이 중얼거린다.) 아니. 너라면 괜찮아. ...이제는.
...그나저나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신가보네. 내려갈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 보면.
 
아자릭:(이제는. ..이정도 거짓말은 괜찮겠지. 또 다시 틀어지는 것은 두려운 탓에 저도 모르게 변명을 했었다. 너를 내려다보고 입꼬리를 당긴채 그러니 일어나야지. 하고 작게 속삭였다.)
응. 사용인에게 말을 전달받은지 조금 되서, 제법 기다리셨을거야.
 
킬리안:(이렇게 푹 잠들어본 적이 너무 오랜만이라, 기분 좋은 느른함에서 깨어나기 싫어 작게 끙 앓는 소리를 낸다. 귓가에 감겨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잠시간 고민하더니 포기했다는 듯 네 손등 위로 제 손을 포개어 깍지를 꼈다.) 좀 일으켜 줘.
 
아자릭:(제가 모르는 형은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는구나. 잠에 취해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제 손등 위로 포개진 손을 맞잡고 부드럽게 힘을 주어 일으킨다.)
식사하기 힘들다면 내가 말을 전해줄 수 있는데. ...더 자고 싶은건 아니지?
 
킬리안:더 자고 싶은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아냐. 잠이야 뭐, (그렇게 말하며 힐끗, 너를 본다. 이제 얕은 잠이나 거슬리는 악몽 따위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몸을 일으키고 나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다가 아쉬운 눈초리를 하고는 깍지를 풀어준다.) 언제든지 다시 잘 수 있으니까.
...세안하고, 옷만 갈아입고 나올게. 기다려 줘, 같이 내려가자.
 
아자릭:응, 기다릴게. (어제는 분명 고된 하루가 되었겠지. 그만큼 푹 쉴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손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오라 말했어.)
 
:그 말에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던지, 킬리안은 자리를 옮기는 그 사이에도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입니다. 한 두 번 힐끗거리며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은 씻기 위해 자리를 옮깁니다.
길지는 않지만 마냥 짧지만도 않은 시간동안 준비를 마친 킬리안이 돌아옵니다.
세안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차림새를 단정히 하고 보면 같은 방에서 잠을 함께하고 나온 것 같은 수상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자릭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아 다행이네요.
힐끗 탁자에 놓인 시계를 보면 아까보다 시간이 꽤 지나 있습니다.
 
킬리안:오래 기다렸어? 슬슬 나가볼까.
 
아자릭:아, 응. (시간을 뒤늦게 확인하고 저도 몸을 일으킨다.)
 
킬리안:그나저나 이 옷, ... (하며 가슴께의 셔츠자락에 손가락을 넣고 당겼다가) ...흠. 아냐. (뭔지 모를 만족스러운 미소를 걸치곤 도로 옷을 놓은 뒤,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2층 안쪽 복도에서 나와 로비의 계단을 타고 내려옵니다.
1층 오른쪽 구석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하면,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가 킬리안과 아자릭을 반겨줍니다.
 
어머니:늦었구나.
 
아자릭: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하하... 멋쩍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분위기를 살펴본다.)
 
킬리안:오늘따라 잠이 잘 깨지 않아서요. (뻔뻔스레 웃으며 의자를 당기곤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제 옆에 앉으라는 듯 아자릭에게 빤히 시선을 둬)
 
아자릭:(시선의 의도를 확인하고 저도 의자를 당겨 네 옆에 앉았다. 왜인지 멋쩍은 기분이 들었어.)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오늘은 미처 문안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어머니:괜찮단다. 날이 흐리니, 쉬이 움직이기는 힘들었겠지. 걱정이 되어 한 말이야.
그나저나, 오늘따라 사이가 좋아보이는구나.
같이 있는 모습을 다 보고.
...조금 놀랍구나.
 
아자릭:... ... 형님과는 원래 사이가 좋았는걸요.
(거짓말에 서투르다는걸 알고 있었다. 제가 무슨 말을 꺼내던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어.)
가족이니까요.
 
어머니:...그래. 가족이니까. 그래도 너희 둘 다 자라고 나니 다 괜찮아 진 것이겠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의지할 곳이 있다면 좋을테고.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눈초리가 말과 다르게 어쩐지 편안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거리를 두던 형제가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하면 놀랍긴 하여도 부모로서 꺼려할 일은 전혀 아닐 텐데요.
아자릭의 거짓말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자릭의 말대로 그녀 또한 아자릭의 핏줄, 제 가족이니까요.
형제의 어머니는 침착한 어조로도 숨기지 못한, 조금은 흔들리는 동공을 이내 거둡니다.
..
곧이어 사용인들이 음식을 하나 둘 내오기 시작합니다.
 
:잘 익은 비프 스테이크, 베이컨을 넣은 크림 스튜, 닭가슴살과 토마토를 곁들인 샐러드, 바게트와 버터, 쌀푸딩…
주방장의 솜씨는 저택을 휩쓴 비극에도 변함없이 훌륭하군요.
 
어머니:그동안 정신이 좀 없었지.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하는 식사로구나.
자, 어서 들렴.
 
아자릭:네.
(본격적으로 식사 시간이 되자 머뭇거리던 손을 움직여 식기를 든다. 분명 여느 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시간인데도 왜이리 낯설게 느껴지는지. 원래라면 넷이서 함께 했을 식탁이 무섭도록 변함 없었다.)
 
킬리안:(이제는 비어있는 상석을 본다. 원래도 네 명이 둘러 앉기엔 지나치게 넓은 공간과 식탁이었기에 한 사람의 빈자리는 당연하게도 눈에 띄었다. 예상과는 다르게도 오히려 그는...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짧았지만 오전에 둘만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 허밍이라도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식기를 들었다. 제 접시의 음식을 썰고, 입으로 가져갔다.)
 
아자릭:(흘끔, 너는 어떤지 습관적으로 그의 표정을 읽어내려다 평소와 다를 것 없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오히려 이상한건 제 쪽인듯 했었지. 당장 혼자가 된 어머니가 신경쓰여 식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머니, 몸이 괜찮으시다면, 날이 개일때 함께 바깥 구경이라도 하는건 어떤가요.
 
어머니:(평소보다는 기운이 없는 몸짓으로 식사를 이어 나갔다. 입 안의 음식물을 천천히 느릿하게 씹어 넘기고는 아자릭의 말에 대답을 이어간다.) 그럼, 좋지. 이 비가 그친다면 말이야. 날이라도 빨리 개어지면 좋으련만, 어둡게 가라앉은 날씨 때문에 기분이 더 처지는 것 같기도 하구나.
 
아자릭:그건... ...
(쓴웃음을 짓는다. 하늘도 슬프게 아버지를 추모하고 있다. 식기를 움직이던 손도 점점 느려지더니 곧이어 멈추었어.)
먹구름이 지나가면 해가 보일테니까 분명 날이 좋을겁니다. 나가는 일정은 제가 신경쓸테니, 그동안 기운 차리셨으면 해요.
(어머니가 이렇게 기운 없으신걸 보면 걱정됩니다.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시선은 온전히 제 어머니를 향해 두었어.)
 
킬리안:... (식사를 이어나가며 두 모자의 대화를 듣는다. 제가 낄 틈이 없는 핏줄간의 유대감. 좋았던 기분이 점차 비에 젖어가는 것 처럼 무겁게 가라앉자 포물선을 그려 짓고 있던 눈웃음이 사라지며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심술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이 흘끗,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아자릭의 시야를 따라 간다.)
 
어머니:네 말이 맞다. 먹구름이 지나가면 해가 보이겠지. 구름은 언젠가 걷어지기 마련일테니... 홍수가 나기 전에 내리는 비가 멎길 바랄 수 밖에. (지금의 상황에 빗댄 것이 분명한 말이었다. 아들의 위로에 힘이 나는지 어머니는 아까보다 기운찬 미소를 짓고는 식기를 들라는 듯 아자릭에게 손짓했다.)
 
아자릭:분명 괜찮을거에요.
(구름은 언젠가 걷어지기 마련이다. 무섭도록 쏟아져내리는 비가 집안의 분위기를 더 가라앉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건 어머니가 미소 지어주었기 때문에 한결 마음이 편해진듯, 저도 마주 옅은 미소를 짓는다. 음식을 입에 넣고 식사를 이어가다 그제서야 제 옆에 있는 형의 시선을 확인했어. 그는 아직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나? )
 
킬리안:(아자릭이 시선을 돌려 저를 보면, 저는 그새 제 접시로 고개를 박고는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숨길 생각 없이 제 접시의 음식을 포크로 쿡쿡 찌르며 심드렁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느껴지는 관심에 힐끗 저도 눈을 돌려 시선을 마주하면 눈을 가늘게 뜨고 너를 마주하더니 대뜸 휙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머니 :...킬리안? (둘만의 대화가 이어짐을 의식했는지, 조금 뒤늦음에 멋쩍은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식사는 입에 좀 맞니? 새로운 주방장이 들어왔다고 하더구나. 너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니까... 조금 걱정이 되네.
 
킬리안:(접시 위의 스테이크나 괜히 괴롭히고 있다,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제 어머니... 라는 사람을 마주한다. 언제 심통을 부렸냐는 듯 대외적인 미소를 걸치고는) ...간이 좀 센 것 빼고는 훌륭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이런. ...먹기 불편한 정도니?
 
킬리안:뭐,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무언가 더 이어 말하려다가 멈칫, 좋은 생각이라도 난 사람처럼 금방 또 짓궃은 미소를 지었다.) …흠.
 
:뭔가 생각하는 듯 짧은 신음을 낸 킬리안은 대뜸 아자릭의 접시 위에 올려진 아스파라거스를 제 포크로 찍어다 입에 가져갑니다.
그러는 동시에 어머니를 짙게 응시하는 노골적인 시선.
순간 찾아온 대화의 정적속에 야채가 아삭이며 씹히는 소리만이 울립니다.
그러고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뻔뻔스러운 미소를 건 그가 냅킨으로 입을 닦습니다.
 
킬리안:이건 만족스럽군요. 조리사가 다른가?
 
:일상적인 대화로 살짝 풀리는 듯 했던 분위기에 얕은 긴장감이 깔립니다.
 
아자릭:...
(분명 방금 전까지 분위기가 환기되었을텐데. 순식간에 긴장감이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예법에 어긋난 행동임을 알텐데도 하는건 분명 제 행동 중에 어떤 것이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든 것이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나봐. 조리사가 다를리가 없을텐데... 제가 따로 말해두겠습니다.
(불편하다면 바로 음식을 교체해도 좋았을텐데. 설마하니 저와 어머니가 한 대화 때문에 쉽사리 꺼내지 못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입가심이라도 필요하지 않아?
 
킬리안:(이제서야 여길 봐주는구나. 심술도 놓았겠다, 네가 제게 관심을 주었겠다. 금방 또 기분이 풀린다. 그럼에도 아까의 네 태도가 영 괘씸해서 괜한 심통을 더 부리고 만다.) 아니, 됐어. 물로 헹구면 될 것 같으니.
그런데 정말로 맛이 달라. 아자릭, 한 번 먹어보지 그래. (하며 제 접시를 슥 밀어다 네 앞으로 놓는다. 어머니를 앞에 두고서 식탁 위로 팔을 올려 턱을 괴기까지 한다. 이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고 싶은거지, 그렇지? 어떤 압박감이 느껴질만한 행동임이 뻔했다. 동조하기를 바라는 눈빛. 공범이 되어달라는 의도가 노골적인 태도.)
 
아자릭:(제 접시 위에 올려진 음식을 보고 머뭇거린다. 조리사에게 전달한다는 이야기까지 했으니, 제가 확인하는게 맞는거겠지. 쥐고 있던 식기로 내어진 음식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음식의 맛은 다르지 않았다.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한 것 자체가 거짓말이었다는걸. 그리고 그걸 알아달라는 듯이 너는 저를 시험한다.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뜻을 모를리가 없었다. 심기가 좋지 않을 때마다 하는 너는 이런 짓궂은 짓을 벌이기도 했으니 더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 해야됐다. 그러니 네 뜻대로 제 어머니 앞에서 저는 거짓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네. 이런 일이 없도록 신경쓰라고 해야겠어.
(그럴 사람이 아닐텐데. 형이 노여워하지 않았으면 해. 자비를 바라고 시선을 교환한다. 묘한 간극에 네 대답이 나올때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침을 삼켜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킬리안:(네 대답이 권총의 방아쇠가 된 것처럼, 동시에 기쁜 듯 환히 웃었다.) 너라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음식에 대한 답이기도 했지만, 다른 뜻을 품었음을 너는 알아 들었을 것이다. 그래, 너는 나와 함께 죄를 진 거야. 드디어 확신한다. 내가 너의 명예를 추락시키고 어떠한 연고 없이 고립시키더라도, 그러니까 너를 구렁텅이로 떠밀더라도… 아니. 떠밀리는 나를 네가 껴안고 함께 떨어져 줄 것이라고. 그러니까 배신하면 안 돼. 나는 너에게 믿음을 준 거야. 아버지에게도 주지 않았던, 나라는 사람의 신뢰 전부를.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이번 실수는 용서해주는 것이다.) ... (힐끗, 어머니라는 사람을 본다. 이게 옳게 된 선이지. 저와 제 옆에 앉은 너. 그리고 반대편에 홀로 앉아있는 타인.)
 
아자릭:(환히 웃는 네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는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다. 제 3자가 볼땐 평범한 가족의 대화처럼 보이겠으나,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저는 너를 바라보고 있으니 네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았다.)
(왜일까, 가까워질수록 이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실없는 생각이 한순간 스쳐지나간다.)
 
:둘이 나눈 것은 짧은 대화였지만, 미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인지 대화가 끝나고도 침묵이 깊어집니다.
그 어색함을 끊어내듯, 어머니가 답답한 듯 작게 한숨을 쉬고는 넵킨으로 입가를 닦습니다.
 
어머니:아자릭, 킬리안. 알았으니 그만하렴.
음식에 대해서는 내가 나중에 주방장에게 일러둘테니.
 
:그러고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까보다 가라앉은,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엽니다.
 
어머니:...그나저나 슬슬… 이 얘기를 꺼내야겠지.
아자릭. (다정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자릭:네, 어머니.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의아했으나, 그녀를 바라본다.)
 
어머니:조금 갑작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어.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시기를 놓칠 것 같아 이야기를 꺼내야겠구나.
...아들아. 네 혼처를 찾아볼 때가 된 것 같구나.
 
:갑자기 결혼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그녀는 여상한 태도로 말을 이어갑니다.
 
어머니:아버지가 갑작스럽게 타계하셨으니 하루 빨리 더 좋은 혼처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니.
(침착하게 말을 이으며 고개를 돌려 킬리안을 바라봤다.) 킬리안, 네가 가주의 자리를 맡게 될 테니 당장은 다른 일들로 바쁠 테니까.
그동안 아자릭이 먼저 자리를 잡아준다면 든든하겠지.
형으로서, 이해 해줄 수 있겠니?
 
:...
갑작스러운 소식에 킬리안이 어떤 한 마디라도 내뱉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 옆이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문득 킬리안에게 시선을 주면…
 
 ✷ 관찰력 또는 심리학 판정 ✷ 
 
아자릭: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를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요?
불안과 분노, 어이없음, 화…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것만 같은 표정을.
...왜 당신이?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 1d2 판정 ✷ 
 
아자릭:2
 
:킬리안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당신과 시선을 맞춥니다.
아까와 같이 만족스러워 보이던 표정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한 방 먹었다는 듯, 분함이 서려있는. 억울한 그 얼굴은...
그 어둡게 가라앉은 붉은 빛의 눈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하면 착각이겠죠.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기 무섭게 어머니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머니:아자릭. 어떻게 생각하니?
 
아자릭:...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런 때가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건 아니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만큼 그럴 준비조차도 하지 못했다는게 사실이었어. 하지만 제가 이 집을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가족을 지키지 못했는데도. 따가운 시선을 저도 모르게 외면한다.)
어머니가 우려하시는 게 무엇인지 압니다.
말씀대로 제가 형님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죠.
그러나 시간을 조금 주셨으면 해요. 저 또한 혼란스러우니.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결심을 굳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제가 바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지 저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에게도 눈길을 둘 수가 없었다.)
 
어머니:그래. 갑작스럽게 꺼낸 말이었지. 네 입장도 이해한단다. 나 또한 당장 혼처를 찾아 식을 치르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힘을 실었던 목소리가 아까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워졌다.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는 제 아들이 누구를 닮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일거야. 우리 가족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저 또한 남은 다른 아들에게 차마 시선을 줄 수 없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본능적으로 두려웠기에.)
 
:완전히 차갑게 가라앉아버린 분위기 속에 더 이상 가족같은 다정한 대화는 이어지지 못합니다. 이제는 식기를 부딪히는 맑은 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자, 다시 어머니가 입을 엽니다.
 
어머니:...충분히 배가 부르구나. 너희도 식사를 거의 끝마치지 않았니?
계속 비가 내렸던 데다가, 그간 좋은 소식도 들은 것이 없으니 영 피로하구나.
너희도 그렇겠지.
 
킬리안:... (결혼 주제가 나온 이후부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자릭:...네.
 
어머니:그래. 아까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고, 그간 바빴을 터인데 오늘은 일들을 좀 내려놓고 쉬도록 하렴.
 
:식사가 종료되는 분위기가 되자 사용인들이 뒷정리를 할 준비를 합니다. 제 주인들이 자리를 뜨면 움직일 생각인 듯 자리를 지키고 있자, 어머니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섭니다.
킬리안은 여전히 제 접시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아자릭:형, 이건. ...괜찮으면 내 방으로 가서 대화하자.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하고 사용인이 있음을 말했어.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나 미동도 않는 너를 기다린다.)
 
킬리안:(입을 꾹 다물고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는다. 마치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버린 것 처럼, 잔뜩 날이 선 태도로 저를 돌아본 얼굴에는 배신감이 잔뜩 묻어났다. 겨우 참아내고 있던 가쁜 숨과 발갛게 오른 열감이 그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 했다.) 대화?
 
아자릭:(마주한 표정에는 감정이 솔직하게 묻어나왔다. 숨길 생각조차 없어보이는 표정에 침착하게 사용인을 곁눈질하며 자리를 비우라 지시한다.)
그래. ...이대로 괜찮아? 어머니의 말씀은 갑작스럽지만, 입장 또한 이해돼. 그렇게해서.. 어머니는 재혼하신거니까.
 
킬리안:(다들 물러나라거나 자리를 옮기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허나 자신이 이 저택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듯, 사용인들은 분위기를 읽고 알아서 식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일어서서 대답을 기다리고만 있는 네 앞에서 저는 당연하게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오만한 그 입이 네게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그게 네 대답이야? 네 어머니가 그랬기 때문에, 너도 똑같은 희생을 하겠다고? 그게 '가족'을 위한 일이니까?
 
아자릭:(네 어머니. 지금은 형의 어머니이기도 한데도 그가 얼마나 가족을 구분하고 있었는지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이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 대화 하고싶은게 아니었어. 표정을 굳힌 채,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간다.)
가족을, 그리고 형을 위해서라면 내가 떠나야하는게 합리적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
(이 선택은 장차 제 가족이 될 사람에게도 못쓸 짓을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희생한다 여기진 않았으나, 이용하는 것은 맞았기에 어느 쪽으로든 최악의 선택이었다.)
나는 무력해서. 형처럼 대단하지 않아서 ... 이런 식으로 밖에 지킬 줄 몰라.
 
킬리안:(점점 더 언성이 높아져만 간다. 이건 내가 바랬던 대답이 아니야. 내가 원했던 관계가 아니었다고. 너와 내 사이를 두고 합리 따위를 논하지 마. 현실 같은게 뭐가 중요해. 가문을 건재하게 만들 방법은 내가 찾으면 돼. 몇 년, 몇 십 년에 얼마의 거금을 들이더라도 네가 원한다면 그쯤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네 앞에 있잖아. 그럼 나는? 난 네 가족이 아냐? 사실은 도망치고 싶은 거지? 이젠 내가 싫어졌어? 나를 가족이라고 말했으면서 역시 '진짜' 가족은 따로 있었다는 거야? 배신감에 속이 엉망으로 뒤섞이는 기분이 들어, 울렁이며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겨우 삼켜 눌렀다.)
네 어머니가 너를 버리고서 재혼을 했더라도 지금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 너라면 했겠지. 하지만 나는 아냐.
나야말로 욕심 부릴 줄만 알아서. 너처럼 희생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식으로 지켜달라고 밖에 못 해.
 
아자릭:(어머니가 나를 버리고서 재혼을 했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거라고. 우습게도 그 말이 맞았다. 제 형이 떠나지 않길 바란다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되는건지 정말로 알 수 없었다. 본래부터 이타적이었던 제가 너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의 너는 떠난다는 말에 배신감을 느끼고, 저는 상처를 준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뿐인 기회라고 생각했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점점 입지도 떨어질테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점부터 했던 결심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고.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벙긋거리다 네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너를 올려다봤어.)
그런 표정 짓지마. 제발..
나는 형이 행복하길 바래. 나를 수단으로 쓰더라도 내 소중한 사람의 행복과 직결된다면 어떤 것이라도 했을거야.
(곁에 있고 싶어. 저도 제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다. 1순위가 될 만큼 이대로 셋이서 영원히 살았으면 했다. 어떤 형태로든 유일한 관계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그래서 자신의 이탈만은 논외로 쳤던것이었다.)
 
킬리안:싫어! 왜 너를 수단으로 써야 하는데?
왜 내가 널 책임지면 안 돼? 나한텐 네 짐을 나눠 들어줄 자격조차 없어?
내가 너에게 어떤... 의미가 되기는 해?
(차라리 제 뺨이라도 때리고 고함이라도 치길 바랬다. 그런 식으로 밖에 말을 못 하냐고 화를 냈으면 했다. 분에 못 이겨 저도 네게 주먹을 휘두르고, 상처를 내고, 피를 봐서 해결 될 문제라면 차라리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너무나도 다정하고 이타적인 사람이라서, 이렇게 네 속을 후벼 파는 말들을 내뱉더라도 무릎을 꿇고 올려다 봐 주는 사람이어서… 속에서 끓어오르는 모진 말들이 네 그런 표정에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서…)
(용암이 끓다 터져 오르듯 발산되던 화가 서서히 식어 사그라들면, 이젠 체념에 가까운 감정만이 남는다. 배신감에서 온 분노가 버려졌다는 우울감이 되고, 다시 외로워진다. 그래도 단 하나만은 묻고 싶었다. 마지막 남은 일말의 기대. 또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최후의 발버둥.) ...아무것도 나누려고 하지 않는 존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어?
난 절대로 행복해지지 못할 거야, 분명히. 네가 없이는….
 
아자릭:(의미. 네 물음이 순간적으로 숨 쉬는 방법까지 잊게 만들 만큼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간과한 것이었다. 가족의 안위를 위했다는 말은 모두 남겨진 것을 생각하지 않고 했던 말이라는 사실을. 네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떨구었다. 아니야, 킬리안. 나는... )
(제가 없이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말에 눈을 질끈 감는다. 네 무릎을 붙잡은 손에 힘이 살짝 실려 바지에 주름이 졌어. 그마저도 네가 아플까 쉽게 풀린다.)
소중하니까 바라본거야. 형이 아무리 싫어해도, 달갑지 않게 느낀다고 해도 노력했던건 다 형이 좋으니까...!
미안해. 떠나지 않을게. 곁에 있게 해줘, 형..
(상처주고 싶지 않아...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후회만이 가득했다. 고개를 들어 너를 볼 자신이 없어 그저 절레 내젓는 것 밖엔 할 수 없었다. 너를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잔뜩 상처를 입은채로 저를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고개를 들면 네가 그렇게 바라볼까 두려웠다. 행복하기만을 바랐던 이가 저를 향해 원망이 섞인 눈빛을 할 것 같았다. 마주할 자신이 없다는건 저 또한 이 관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는걸.)
 
킬리안:아자릭. (차분하게 네 이름을 불렀다. 눈 앞에는 그 이름의 주인인 사내가 몸을 웅크리곤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보인다. 손을 뻗어 제 무릎을 붙잡은 손등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제 앞의 신앙에게 고해했다.)
내 가족은 너 뿐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비어버린 그 자리에 내가 허락한 사람은 너 뿐이었다고.
(외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너와 네 어머니가 정답게 떠드는 모습을 질투했던 때에도, 돌아보지 않는 제 아버지를 쉴틈 없이 따라다니던 때에도, 걸어 잠근 울타리 속에 결국은 혼자만이 남게 되었을 때에도… 가슴 한 켠이 욱신거리며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차츰 감정을 담고 소리를 높여갔다.)
기약없는 외로움을 한없이 기다려주었던 사람은 오로지 너 뿐이니까!
(네 마음을 이해한다며 뜻대로 하라고 무릎 꿇은 널 일으켜 세울 수도 있었다.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알고 마음만은 곁에 있을 것을 안다며 가식으로 첨철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는 이기적이고, 속부터 곯아버린 아주 나쁘고 못되먹은 사람임을 알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애원하는 너를 붙잡을 수 밖에 없었다. 상처주고 싶지 않아,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을 쉬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하, 더운 숨을 크게 한 번 토해냈다. 울먹임에 묻혀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낮고 먹먹한 목소리는 진심을 고백한다.)
 
킬리안:내가 네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길 허락해 줘. 너를 도울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지 할게.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날 포기하지 말아줘. 내 곁에 있어줘….
 
아자릭:(제 손등 위로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 따뜻하다 느낀 것이 한순간 사라질까 본능적인 두려움 밖에 느끼지 못했다. 잠깐이나마 이 가족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큰 안도감을 느꼈는지. 그것마저 네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를 오랫동안 지켜본 만큼,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으니 상처 받은 이유도 모를 수가 없었다. 먹먹한 목소리, 그리고 내 곁에 있어달라는 처절한 진심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니 고개를 들어 네 다리를 붙잡고 올려다본다. 하고 싶은 말을 선뜻 내뱉지 못해 미간이 찌푸려지고 입술을 달싹인다. 제가 했던 실수가 소중한 사람의 어떤 모습을 보이게 만들었는지. 이런 모습을 정말로 보고 싶었던걸까. 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니었다.)
... ....곁에, ...곁에 있을게.
(포기하지 않을게. 네 불안을 막으려 급히 대답한다. 이미 당신은 제 의미있는 사람인데도 닿지 않았던걸까. 견고히 벽을 세우던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도. 그 노력이 지친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를 망치는 존재가 꼭 자신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애가 타기 시작했다. 시선 끝에는 불안과 걱정이 담기고 두 눈동자에 너만을 투영했다. 내 가족, 내 소중한 사람, 내 ... ...)
어머니가 재혼해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난 형을...
(말끝을 흐린다. 맹목적인 만큼 제 평생에는 네가 있었다는 것을.)
 
킬리안:(흐린 눈 틈 사이로 틀어 막듯 다급하게 대답하는 너를 내려다 본다. 차마 끝 맺지 못하는 말과 잘게 떨리는 목소리.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에 불현듯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내가 너를 또 상처 입혔구나. 네가 제게 손을 뻗어 주었을 때 매정하게 쳐내던 예전의 그 때처럼. 배신감과 억울함에 휩쓸려 감정을 모두 토해내고 나서야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아자릭, 널 상처 입히고 싶었던 게 아냐. 나는 그저, 그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났더라도 이 애정이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라고.)
아자릭, 나는...
(불안감에 다급하게 널 불렀지만, 턱 막힌 듯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지. 사과하는 법 따위는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지? 두려움에 떨리는 동공에는 네가 담긴다.)
...고개 들어. 날 봐.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네가 나로 인해 지쳐버리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그럼에도 너를 곁에서 떠나 보내지는 못하겠다. 이기적으로 굴되 비굴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걸. 너를 이해하겠다는 말 대신 손을 뻗어 네 턱을 감싸 쥐고 저를 올려다 보게 한다.)
...더 말하지 않아도 돼.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어떠한 형태로든 너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니까.
 
아자릭:(왜곡된 의도는 서로에게 전달되었다. 가슴 속에 답답함이 가시질 않고 용서를 구할 시간은 이미 늦었다는 점. 소중한 탓에 하고자 했던 선택이 불러온 결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겉돈다. 제 진심에 대한 의심이 저에게도 퍼져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이해조차도 체념하고 한 말일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분명 시선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왜 네게 용서받고 있지 않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까. 눈동자 너머로 네가 제 불안을 알아챌 것 같기에 제 턱을 감싸 쥐는 손을 포개며 그게 안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묻는다. 이 상황이 된 이유에 감히 잘못을 저울질 할 수 있을리가. 네 말대로 저는 너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예전으로 돌아가길 두려워하고, 상처입히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게 될 정도로 네 웃는 모습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거짓이 아님을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제가 네 선 안에 들어갔기에 저는 제 위치를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는걸. 철없게도 자신이 받아오고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든게 좋아질거라 여겼다.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는걸 왜 몰랐을까.)
...응.
(네 손에 고개를 파묻음과 함께 지그시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자조적인 목소리를 최대한 숨기려 작게 대답한다. 몸을 낮추려 꿇었던 무릎은 이미 두 다리 모두 땅에 떨구어졌다.)
이 문제는 더 신경 안쓰이도록 어머니께 잘 말씀드려볼게. 그러니, 떠날 일은 더더욱 없을거야.
(어젯밤처럼 저를 대해달라고. 네가 조금이라도 불안한 기분을 떨쳐내라고 옅은 미소를 보인다. 정작 제 혼란스러운 생각은 모두 삼켜 감춰둔 채.)
 
킬리안:(고고하게 자리에 앉아있던 몸체는 어느새 너를 따라 바닥으로 내려 앉는다. 두 무릎을 바닥에 대고, 네 얼굴을 감싸 쥐었던 손 끝을 턱선, 목, 어깨를 따라 흘려 내린다. 네 두 팔을 손아귀에 꾹 쥐다가 이내 끌어당겨 매달리듯 품에 제 얼굴을 묻었다. 닿는 익숙한 체온을 힘주어 당겨 끌어 안는다. 네가 제 명줄이라도 되는 듯 붙들은 두 팔이 덜덜 떨려온다.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품에서 달아나 버릴까봐. 뜨겁게 열이 오른 눈가를 네 어깨에 문지르다 이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다.)
그래. 네가 떠나지만 않는다면.
(정말 미안해, 아자릭. 나는 네 유약함을, 네 죄책감을 볼모로 삼아서라도 곁에 있을 거야. 나는 너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어서 이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해. 질척한 감정을 목 뒤로 삼키고는 위태로워 보이는 미소에 저도 마주 입꼬리를 당겨 웃어 보인다. 소리치고 화내며 제 진심을 고하다가도 네가 저로 인해 상처받지 않았으면, 괴로운 얼굴을 하지 않았으면. 그런 양면적인 감정이 든다. 이렇게 웃으면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직감을 덮어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만이 담기던 시야에 다른 광경들을 들이고 나면 시간이 멈춘 듯 적막이 가득한, 저 둘만이 존재하는 식당이 보인다. 감정을 잔뜩 쏟아붓고 힘이 쭉 빠지며 지치기는 했지만 일어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눈으로 다시 너와 시선을 마주했다. 네 다정에 위로 받게 해달라고.)
 
아자릭:(분명 잠들기 전에도 했던 포옹일텐데. 절박함이 묻어날 정도로 꼭 안으면 저는 세게 마주 안아주지 않고 그저 네 등 위에 손을 얹는다. 생각에 잠길 시간조차 없이 붉은 눈동자가 저를 응시한다. 떠나지 않는다면. 네가 떠나지 않는다면 상처입을 일 없다는 듯이, 마치 경고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영리한 너라면 누가 이 관계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써 생각을 지우고 슬픈 낯을 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잡는다.)
사용인들을 내보내기 잘했지.
(이런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을리가. 실소를 짓고 다시 한 번 포옹을 한다. 등을 두어번 토닥이고 눈을 느릿 감았다 뜨면 조금이라도 현실과 멀어진 것 같은 기분에 한결 나아졌다. 어깨를 타고 팔을 조심스레 감싸 몸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어. 눈에 띄는 구겨진 옷을 다시 단정하게 정리해준다. 여지껏 그래왔던 것마냥,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킬리안:(간절하게 얽매여 올 것이라고 생각한 두 팔은 어디로 가고, 제 성에는 부족한 온기가 가볍게 맞닿아 온다. 그 미묘한 찰나를 놓칠 줄 모르는 곤두선 직감에 머릿속이 붉은 경고로 가득 울렸다. 어릴 적부터 생존을 위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제 뒤만를 졸졸 따라오던 헌신적인 동생이 덜컥 제자리에 멈춰 섰다. 손을 뻗으면 다시 잡아주겠지. 불안감을 억누르고 손을 뻗으려다 멈칫, 굳는다. 만약 잡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거절 당하면? 불안감이 이어지자 그것을 절단하듯 네 낮고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몸을 감싸 안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제서야 현실적인 감각이 돌아왔다.)
...이만 나가자.
(처음으로 이 관계의 목격자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단호하게 너를 낭떠러지에서 밀어 뜨리려던 손이 순간 머뭇거린다.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고 해도, 그게 오롯한 네가 아니면 어떡해? 우리 둘 사이 발치에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하는 금을 인지하자 사소한 것에 불안해졌다. 옷을 털어주는 손을 얌전히 받다가 네가 허리를 곧게 펴고 나면 팔을 뻗어 네 옷 소매를 꽉 쥔다. 금방 안정했다가, 또 다시 신경이 곤두섰다가 했다.)
누가 볼까봐 걱정되잖아, 너.
 
아자릭:(아, 하는 탄식. 갑작스레 잡힌 옷소매를 내려다본다. 제 행동에 문제가 있었을까? 괜한 구설수에 올라 네가 피해 받는걸 걱정하던건 변함 없었다. 다툼 아닌 다툼이니 형제끼리 싸웠다는 오해도 받기 싫을 뿐더러 어머니 또한 걱정하실테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제 형이 걱정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해주어 괜찮다는 듯이 눈웃음 지었어.)
그렇지. 아직도 소문을 신경쓰는 내가 이상해?
우리가 자리를 비워주어야 사용인도 이곳을 정리할테니까. 슬슬 나가는게 좋겠지.
(따지자면 그들의 일을 방해한걸지도. 물론 고용주 입장으로써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생각이기는 했다. 소매를 쥐고있는 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듯 네가 하는 행동을 지켜본다.)
 
킬리안:(방금까지의 시간이 깔끔하게 지워진 것 처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 평소와 같이 호선을 그린 눈웃음. 그런데에도 저를 대하는 기류가 달라진 것 같다는 본능적인 감지는, 그래. 다 제가 예민한 탓일 거다. 제가 의심하고 소리칠 줄 밖에 모르는 뒤틀어진 사람이어서. 네 제안에 응하듯 저도 따라서 웃어 보인다. 억지로 웃는 것 쯤은 제가 자신있어 하는 것들 줄 하나였으니까.)
됐어, 이해 해. 나를 위해서 신경 쓰는 거잖아.
(이 말 만은 진심이었다. 배신감에 끓었던 감정이 식고 나니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 네가 저를 소중히 여기는 것 쯤은 알고, 가식된 온정은 없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제는… '조심해야겠다.' 네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다. 문득 네가 싫어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 눈치보듯 슬며시 소매를 놓아 주었다.)
먼저 가. ...금방 뒤따라 갈게.
 
아자릭:(누그러진 목소리로 순순히 소매를 놓아주자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되는 듯이 한 번 발길을 머뭇거린다.)
응, 나중에 봐. 오늘 형이 바쁘지 않다면 찾아갈게.
(하루는 이제 시작이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분명 그 또한 할일이 많겠지. 제가 너무 사람을 붙잡고 있었다는 생각에 더는 미련없이 자리를 뜬다.)
 
킬리안:(뒤돌아 걸어가는 네 뒷모습에 순간 한 걸음 내딛었다가, 도로 제자리에 물러 선다. 네가 제게서 멀어지던 그 상상이 눈 앞에 덧씌워진다. 불안감에 머릿속 가득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제가 먼저 가라고 말했던 주제에, 손톱이 살갗에 자국을 낼 정도로 주먹을 꾹 쥐었다가 차분히 풀었다.)
...
(텅 빈 넓은 식당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생각한다. 그래도 머뭇거렸잖아. 아직까진 내가 걱정되는거야. 너는 날 위태롭게 보고 있으니까. 울렁이는 속에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면 아직까지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자릭이 먼저 식당을 빠져나가던 로비 한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웁니다.
 
아자릭:...어머니?
(설마 듣고 있었던건 아니겠지. 괜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그녀쪽으로 다가간다.)
 
:아자릭이 그녀의 부름에 따라가면, 어머니는 따뜻한 체온이 감도는 손으로 아자릭의 팔을 다정하게 감싸 쥡니다.
 
어머니:...네 형과 할 얘기가 많았나 보구나. 이제서야 나오고 그래. (대화를 들은 것은 아닌지, 단순한 염려의 말만을 늘어 놓았다.)
 
아자릭:하하..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형님을 잡아둔 것 뿐입니다. 기다리실 줄 알았더라면, 신경썼을텐데 왜..
(하실 말씀이 있으시군요.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아니야. 방에서 쉬고 있다가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잠깐 나온 것 뿐이란다. (잠깐 말을 고르다 슬며시 미소짓고는 네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정말 많이 컸구나. 이리 의젓한 말도 할 줄 알고. 너무 새삼스러웠니?
 
아자릭: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네 손이 닿기 쉽게 고개를 살짝 숙인다. 어렸을 때 저는 어머니가 제 볼을 감싸면 그 손길에 뺨을 부비곤 했다. 지금은 체면을 차릴 나이라는 것을 알고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받는다.)
아니요. 가끔 이렇게... 다정하게 말씀하실 때마다, 응석을 부리고 싶어지는 걸 보면 아직은 덜 자랐나봅니다.
(농담을 섞어가면서 작은 웃음소리를 흘린다. 그래도 다행인건 제 어머니의 상태가 나쁘지는 않아보인다는 점이었다.)
 
어머니:아유, 요 귀여운 녀석. (장난스레 제 아들의 볼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가 놓아 주고는 따뜻한 미소로 얼굴을 마주 본다.) 응석 부려도 돼. 우리 둘 뿐인데 누가 무어라 하겠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어둠이 가라앉은 저택에서도 네가 있으면 근심걱정이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문득, 홀로 있을 다른 제 아들을 떠올리고는 하려던 말이 기억났는지 풀어졌던 표정에는 다시금 근심이 어려왔다.) 음, 아자릭.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냐면...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진 말고 들으렴.
 
:긴장이 되는지 그녀는 작게 침을 삼키더니 마저 말을 이어 나갑니다.
 
어머니:...저택 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더구나. 네가 네 형과 밤을 함께 했다고. (그가 놀라지 않게 하려는 듯 조심스러운, 차분한 어조로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 나갔다.)
아자릭, 내 아들. 난 완전히 거짓된 소문은 없다고 생각한단다. 모든 소문에는 불씨가 존재하지.
하지만 아들아, 나는 너와 네 형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너는 어릴 때부터 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다정한 아이였으니…. 아마 아비를 잃은 슬픔에 괴로워할 네 형을 혼자 두기 어려웠겠지.
 
:어머니는 여기까지 내 말을 이해하겠냐는 듯, 타이르는 것으로 오해할까 염려되었는지 당신의 손을 끌어다 제 손으로 감싸 쥡니다.
 
어머니:하지만 네 형도 네게 너와 같은 감정을 품고 있는 건지는 나는 잘 모르겠구나.
너도 이해하겠지만 언젠가 혼인은 해야했던 것이고. 특별히 이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네가 이 가문을 단단하게 잡아 주어야 하는게 맞아.
내가 무엇을 염려하는지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내가 걱정하는건, 너희 둘의 감정이 너희를 무너뜨리게 될까봐... 어미는 그거 하나만이 걱정 된다. 타인에게 자신 전부를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아.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아자릭:... ...
(제가 우려하던 소식이 이미 제 어머니의 귀에 들렸나. 그게 아니더라도 식사를 통해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다정하고, 현명하시니 결혼 이야기를 급하게 꺼낸 이유 또한 그녀가 걱정하는 '어떤 것'을 위해서였다. 못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저와 제 형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말문이 막혀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손을 감싸쥐는 손길에 저도 그녀의 손을 약하게나마 마주 잡았어.)
어머니, 저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제 형과 저 사이의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오히려 가족이라면 믿고 이해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더이상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씀이 마치 저와 제 형의 관계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 방금 전까지 들었던 불안함의 원인을 찾은 듯 했다.)
심려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게 어떤 것인지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제 형님의 불안의 이유가 만약 저라면. 어머니의 시선으로 본 저와 형의 관계는 정상적이지 못하다 여겨졌다. 저를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걱정 말라는 듯이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한채, 마주 붙잡는 손을 내려다본다.)
 
아자릭:...어머니. 의지 하나만으로 외면하지 않기를 택한다면 오만한 이야기일까요.
(위한다는 마음 가짐 하나로 모든 것을 감내할 수는 없는건가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남겨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삶.)
 
어머니:(제게 맞잡아오는 손이 묘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다. 당연한 일이다. 제가 키우고 보살펴온 제 자식인 것을, 그런 작은 변화도 모를 리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아까 그 식당에서, 제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잠깐의 시간동안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구나, 어떤 변화가 일어났구나 하는 그런 예측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게 어떠한 다짐과 같은 것을 주었다고. 오만하냐는 물음으로 포장한 그 말에는 분명한 뜻이 서려 있었다. 오만하더라도 그 의지를 잇고 싶다고, 제게는 그래야만 한다고. 그런 의지를 품게 한 사람은 아마도, 제가 걱정했던... 생각이 길어지자 지끈 두통이 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미간을 좁히고 눈을 꾹 감았다가 천천히 뜬다.) ...네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겠니? 네가 바라던 이상과 결과물이 다르더라도.
 
아자릭:(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한다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후회할 것이라 여겼다. 자신 또한 겪을 감정이겠지. 바보같은 실수로 인해 이미 무엇을 조심해야할지 깨달았었다. 바라던 이상과 결과물이 다르더라도, 저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점을 더 후회할 것 같았다. ...그 점이 제가 미련한 이유겠지. 형을 처음 마주 했을때도 미련하게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 또한 마찬가지인 상황이 아닌가.)
(가족이니 그의 행복을 바라고, 지켜봐온 사람이니 더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했다. 어쩌면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에 의해 그에게 더 눈길이 갔을지 모를 일이었다. 형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생각은 가족이라는 틀을 씌워 정당화를 한 것일지도 모르지. 아직도 자신이 형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감정이니까.)
(제 어머니와 시선을 마주한다. 저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생각이 읽힐 정도로 노골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저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제가 사랑하는 가족인 당신 또한, 제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존중해줄 것을 알기에. 그리고 저를 잘 아는 만큼 대답하지 않는 의미에 담긴 뜻을 그대로 전달받을거라 여겼다.)
...날씨가 짓궂어 평소보다 쌀쌀할겁니다.
어머니께 따로 말씀드릴 것이 있으니, 나중에 찾아가겠습니다.
 
어머니:(누굴 닮았는지, 저 의지 하나는 꺾을 수가 없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하지 않았는가. 네게서는 언뜻 확신하지 못하는 기색이 비춰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린 선택이니 필히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결과에 후회하게 되더라도 그 이유만은 찾을 수 있길 마음속으로나마 작게 빈다. 결국은 수긍하듯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나중에 이야기 하자꾸나. 지금은 이 쯤이면 되었다. 그만 돌아가보렴.
 
:어머니가 아자릭의 팔을 놔 주고, 먼저 가도 된다는 듯 온화하게 웃어 보입니다
 
아자릭:(어머니가 제 뜻을 꺾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저를 사랑하고 배려해주시니. 지금의 결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앞으로 다잡아야할 마음가짐이라고 여기며 마주 웃는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먼저 배웅을 하고 싶었는데도. 자리를 떠나는 발걸음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아가야지. 더이상 주저 하지 않고 등 돌려 떠난다.)
 
:아자릭이 뒤를 돌아보면, 여전한 모습으로 웃어주는 제 어머니가 보입니다.
홀로 서 있는 그 모습에서, 외로워 보이던 누군가와 달리 곧고 단단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여느때와 같은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비를 지나 2층 계단으로 향합니다.
 
 ✷ 듣기 판정 ✷ 
 
아자릭: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음? 무슨 소리가 났던가.)
 
:큰 빗방울이 창문을 툭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소리에 묻혀 다른 뭔가를 놓친 것 같은데… 착각이겠죠?
 
.
 
───────────────────
 
.
 
:...생각도 못 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서일까요?
방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괜한 고민만이 깊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한참을 앉아있다 기분이라도 전환하는게 좋을 것 같아 비교적 넓고 탁 트인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응접실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와 소파에 몸을 푹 묻어 뉘이니 미묘하게 축 처지는 게, 눈이 자꾸만 느릿하게 감겨 옵니다.
방 한구석의 커다란 괘종시계에서 시계 소리가 똑똑 들려옵니다.
적막 속에 잠이 들려던 찰나, 벌컥 문이 열리며 킬리안이 응접실로 들어섭니다.
 
:그는 편하게 풀어헤친 차림에 양손 가득 크고 작은 상자를 가득 들고 있군요.
 
킬리안:(상자를 내려놓기 위해 무던한 눈으로 안을 둘러보다 너와 눈이 마주치곤 놀란 눈치가 된다.) 아자릭? …방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는 가져온 상자들을 탁자 위에 쌓아둔 채 맞은편 소파에 앉습니다.
 
아자릭:아.
(탄식을 내뱉고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킨다. 이 시간에 응접실에 들릴 일이 있었나? 자리를 비워주어야 하나 싶은 참에 내려놓은 상자에 시선이 향한다.)
잠깐 나왔어. 그대로 잠에 들 것 같아서.. 그나저나, 이건?
 
킬리안:(그 말에 쌓아둔 상자를 맨 위에서부터 하나 들어 올리더니 옆의 탁자 빈 공간에 내려 뒀다.)
아버지의 유품. 방에서 정리하기엔 짐이 좀 많아서.
(약간은 어색한 투로 대답하며 상자를 열어 물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눈 앞의 상자와 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자릭:(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할 때가 되었구나. 살아있던 흔적을 하나 둘씩 치우고 나니, 그가 정말 죽었다는 걸 느낀다. 네가 있는 쪽으로 한걸음 다가가 같이 봐도 괜찮지? 라고 말하며 네가 정리하고 있는 상자를 함께 본다.)
 
:아자릭이 슬쩍 상자 안을 들여다 보면, 서류가 잔뜩 든 상자부터 망가진 만년필이 가득 든 상자까지. 잡동사니라고 해도 손색없을 것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습니다.
 
킬리안:뭐, ...마음대로 해. 너도 아버지 아들이잖아.
(제 입으로 이런 인정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이젠 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큰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된 것 같아 쓰린 마음에 헛웃음을 뱉었다.)
특별한 건 없더라고. 서류, 필기구, 수첩, ...그런 것들 뿐이야. 인간적인 것 하나 없이.
 
아자릭:(아버지의 아들이었지. 제게는 무게감이 없는 의미었지만 네게는 다를 것이라 여겼다. 물건을 보는 도중 만년필을 꺼내 세심하게 살펴본다.)
흔한 물건이잖아. 항상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고.
특별히 아끼는 물건 같은건... 역시 본 적은 없네.
(괜스레 네 서랍 안에 있던 사진을 떠올린다. 역시 필요없는 생각이었다.)
 
킬리안:특별히 아끼는 물건이라.
(그 말에 자조했다. 있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떠나고 나서 있었다는 사실이 남는들 무엇 하겠는가. 그 아무도 몰랐던 애정을 감히 아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생각에 잠겨 상자 안으로 괜한 헛손질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고개를 들었다.)
...아. 하나 발견한 게 있긴 한데.
 
:하고는 제 자켓의 안쪽 품을 뒤적거리더니 얄팍한 검은 종이상자 하나를 당신에게 내밉니다.
 
킬리안:(네게 손을 뻗어 건네고는 가져가라는 듯 눈짓을 했다.) 아버지의 방에서 찾았어. 이거 네 것 같더라고.
 
아자릭:응?
(제 것이라니. 아버지가 제게 전달할 물건 같은건 없을텐데. 내밀어진 상자를 한 번 쳐다보고 두 손으로 잡아 들었다. 검은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어떻게 알았어? 이게 내 것 같다는걸.
(그 해답은 상자 안에 있겠지. 열어본다.)
 
:작은 상자를 받아 열어보면, ...이게 제 것이라구요? 수수한 디자인의 백금색 목걸이가 보입니다.
상자에서 꺼내보면, 얇은 체인 사이로 작은 장식물이 걸려 있습니다.
 
킬리안:아버지의 책상 서랍, 같이 놓여있던 카드에 네 이름이 쓰여 있었어.
(상자를 열어 본 네 눈치를 슬쩍 보는 듯 했다. 덤덤하게 말을 이어 나간다.)
아마 언젠가의 생일 선물이었던 것 아닐까. …직접 전달하지 못한 것 같지만.
 
:(킬리안이나 반지에 관찰 판정 가능합니다!)
 
아자릭:... 형이 직접 전달해주었구나.
(그와 아버지의 관계를 알고 있으니 이 선물 또한 막연히 달가워 할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킬리안을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분노하거나, 질투하진 않을까요. 그런 염려에 킬리안을 바라보면 되려 그는 당신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 같습니다.
눈빛 깊숙한 곳에는 어쩐지 당신이 그것에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담긴 것도 같습니다.
...왜? 아버지의 선물이라면서요.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 1d2 판정 ✷ 
 
아자릭:1
(우려했던 반응과는 달라 되려 당황한다. 그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을까 하는 생각에 기뻐해야할지 잠깐 고민이 될 정도였다. 제가 아는 아버지라면... 자식의 생일선물을 끝까지 전해주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야, 아는 이를 시켜 전달하게 만들어도 되었으니.)
(여간 의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네가 전해주었으니 그저 믿고 넘어갈 뿐이었다.)
고마워. 주인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물건이었네.
(쓴웃음을 지으며 목걸이에 걸린 장식물을 들어본다.)
 
 ✷ 관찰력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체인에 걸려있는 장식이 신경 쓰입니다. 체인을 통과하는 링의 형태가 마치 반지처럼 생겼네요.
얇은 반지에 박힌 작은 큐빅.
문득 단순한 치장용이 아닌 다른 의미를 담은 장신구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은 흔하니까요. 예민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아자릭:(선물의 의미를 둘 정도로 세심한 사람이던가. 아버지를 떠올릴려고 하지만 역시 그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반지를 매만지다 상념에 빠지고 있으니 앞에 있을 네가 무안해질까 정신을 차린다. 그대로 꺼내둔 선물을 다시 상자에 보관한다.)
기쁘지만, 역시 보관해두는 게 좋겠지.
내게 너무 과분한 선물이야.
(아버지의 유일한 인간적인 유품이 아닌가.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살아있을 때 전해주었더라면 어땠을지, 아들을 생각하는 일말의 감정이라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킬리안:난 이제서야 그게 자리를 찾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과분하다니. 넌 아버지의 선물 따위에 그 정도의 가치를 두고 있었구나. 죽은 아버지의 이름을 훔쳐 마음을 포장한 것은 저 스스로였음에도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너는 어떤 얼굴을 할까. 당혹스러움? 불쾌함? 저를 소중히 한다는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을까.)
(...문득 떠올린다. 나는 네 생일을 챙겨 준 적이 있었던가? 타인의 이름을 빌렸음에도 이것은 제가 주는 첫 선물이었다.)
이리 와. 내가 걸어줄게. ...준 사람 성의도 생각해야지.
 
아자릭:(자리를 찾아갔다니. 그 말을 네가 하는 이유를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낯선 느낌을 감지하는 건 다 너를 봐왔기 때문이었다. )
...지금?
(멋쩍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쓰이지도 못한 채 서랍 안에 그대로 보관되는 것보다는 한 번쯤은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네 선의를 거절하고 싶지는 않으니 순순히 네게 다가가 상자를 맡긴다.)
그럼, 이번 한 번만 부탁할게.
(괜한 의구심이 들때마다 그저 모른척 속내를 삼킨다.)
 
킬리안:(그런 네 멋쩍음을 제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그럼에도 제 선물을 받아주는 네 모습을 보고 싶어,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한 척 뻔뻔스레 네가 내민 상자를 받아 들었다. 이 행동이 점수를 깎아 먹는 짓이 되지는 않길 바라면서.)
뒤 돌아 봐.
(하며 상자를 열곤, 다른 손으로 네 뒷목을 쓸었다.)
 
:그는 당신의 뒤로 돌아가 길게 자란 뒷머리를 쓸어 넘깁니다.
단단하고 곧은 손의 열기가 당신의 목덜미를 쓸어내립니다.
카라 사이로 보이는 흰 목덜미에 체인을 둘러 감쌉니다.
킬리안의 시선은 당신의 뒷목에 닿고 있겠죠.
침묵이 길어지자 곤두선 신경에 촉각이 예민해지고, 목덜미에 그의 숨결이 닿는 것만 같습니다.
곧 쇳덩이가 달각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작은 걸쇠가 잘 걸리지 않는지 장신구 줄이 요동치고, 그의 손가락이 목덜미를 은근히 쓸어 올린 것 같습니다.
스친 곳에 닿은 열기가 지문을 남긴 것만 같아서…
그리고는 그가 됐다며 당신의 목에서 손을 떨어뜨립니다.
 
킬리안:됐다.
(손을 떼어 내고는 한 걸음 물러섰다. 괜한 긴장감에 애써 무던한 척 입가에 힘을 주었다.)
이 쪽 봐봐.
 
아자릭:(뒤를 도는 동안 네가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으니 사소한 긴장감이 돌았다. 손끝의 감각이 스쳐지나가면 온기가 머물렀던 흔적이 괜스레 크게 느껴진다. 아마 고개를 돌렸더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저는 몰라도 눈 앞의 남자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의식이 된다는 건 불안함의 징조였다. 다 되었다는 말을 듣고 제 목에 걸린 목걸이에 손을 얹는다. 작은 걸쇠가 나름 풀어지지 않도록 줄을 이어주고 있었다.
네 말에 간결히 대답하고 뒤를 돌아본다. 시선을 잠시 내리깔다가 괜찮은가 하고 네 표정을 바라본다.)
놀랍도록 길이가 적절해.
(괜찮아? 나지막하게 묻는 물음은 중의적이었다. 제 모습을 뜻하는걸지, 네 기분을 묻는건지 해석하는건 네 판단이었다.)
 
킬리안:...그렇네.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그야 당연하지. 자문자답을 꾹 삼키곤 작게 웃어보였다.)
잘 어울려. 가끔씩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걸.
(손을 뻗어 흐트러진 줄을 살짝 당겨 장식이 중앙에 오도록 균형을 맞춰 준다. 반지에 시선이 잠깐 닿은 듯도 했다. 네 물음에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코트 하듯 네 앞으로 손을 뻗는다.)
직접 봐. (응접실 뒤편 벽에는 장식용으로 걸어둔 화려한 거울이 하나 있었으니.)
 
아자릭:(아버지는 제 형과 저, 어느쪽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알고는 있다. 잘 어울린다 말해주어 옅은 미소라도 지어보지만 다행이라는 감정이 더 많이 묻어나온 표정이었다.)
(내밀어진 손을 포개면 발걸음을 한 두발자국씩 움직여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거울을 마주한다. 제 모습, 그리고 옆에서 저를 보고 있는 네 모습이 함께 비친다.)
평소에 장신구를 차고 다니지 않으니 어색하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여.
(역시, 과분하게 느껴지네.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리며 거울에 비친 저를 응시하고 목가를 매만진다. 형은 잘 어울린다고 해주었으니, 다른 사람 눈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저만 이 목걸이를 무겁게 생각하는 것일거라고. 기뻐해야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애써 너를 보지 않는다.)
 
킬리안: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거야.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인간의 욕망을 추켜 올리는 악마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네 양 어깨를 가볍게 쥐고 뒤로 젖혀 거울을 바라보게 한다. 선의는 받으면 받을 수록 사람을 익숙해지게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언젠가 자신에게 적셔들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했다. 그러면 균열을 의식했던 이 불안감도 언젠가는 잦아들게 될 거라고. 더 멀어지지 않도록 네 손을 꼭 붙잡고 있으면 되는 일이 아닐까.)
원한다면 잘 어울릴 만한 것들을 더 선물해 줄게. 내 방에도 있어, 꽤 많아.
 
아자릭:(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어색함의 이유에 물론 포함되어있겠지. 새삼 목걸이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네 취향보다는 제 이미지에 맞는 선물인 것이 분명했다. 어깨를 쥐고 있는 힘은 가벼웠으나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욕심을 드러낼만 했지만 제 욕심은 이런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어깨 위에 올려진 네 손을 가볍게 덮고 고개를 반쯤 돌려 미소짓는다.)
괜찮아. 무게가 느껴질만한 것들은 내게 어울리지 않다는걸 알잖아.
(물욕이 없다는 것쯤은 너도 알겠지. 그렇기에 분수에 맞지 않는 옷을 입지 않는다. 과시와 허영은 제가 감히 다루지 않는 것들이다.)
형이 좋아하는 물건을 탐할 생각은 더더욱 없어.
그래도, 선물해주겠다고 말해주어서 고마워.
(네 권유 한 마디가, 허울뿐인 호의 자체가, 저는 귀하게 여겼다. 진심으로 기쁜 듯, 아버지의 유품을 받았을 때보다 다소 기운차보였다.)
 
킬리안:(내가 직접, 나의 것을 주겠다는데 왜 거절하는 거지. 심지어 이번엔 제 아버지의 이름을 훔친 것도 아니었다. 솔직한 제 선의임에도 불구하고 받지 않겠다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눈을 가늘게 떴지만, 제 손등을 덮는 온기와 네 기운찬 미소에 별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고 마는 것이다.)
그게 잘 어울린다는 말은 진심이니까. 가끔은 걸고 다녀. (제 욕망에 기반한 투정을 작게 부려본다. 혹여나 거절당할까 약간은 조심스럽게.)
 
아자릭:아하하.. 알았어.
오히려 형이 더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가끔이라고 해봤자 어느정도 하고 다닐지는 모를 일이었으니, 이정도 대답은 괜찮겠지. 네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거울을 등치고 너를 바라본채로 말을 이어간다.)
그러고보니 형의 생일이 머지 않았지. 그때마다 형에게 직접 어떤지 물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형이 원하는 걸 주고 싶어.
(가지고 싶은건 없어? 하고 넌지시 묻는다.)
 
킬리안:내 생일?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랬던가. 벌써 제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구나. 어릴 적 축하받길 바랬던 마음이 무심하게 저버려진 몇 해 이후로는 딱히 세어본 적이 없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없냐는 말에 덜컥 말문이 막힌다. 저 스스로에게 질문이란걸 해본 적 있었던가.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뭘 할 때 기쁘고 뭘 할 때 웃었더라. 질문의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자 저도 모르게 네 어깨를 쥐었던 손이 슬며시 내려왔고 제 미간을 좁혔다.)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거나면 돼.
(네가 저를 소중히 한다는 증명으로서 가치가 되는 거니까. 오래된 기억 속, 네가 준 생일 선물을 내동댕이 쳤던 장면이 있다. 하늘을 비추던 해가 땅 아래로 사라지면 홀로 몸을 웅크린 채 서럽게 울다 문득 네가 준 온기만이 제게 유일해서, 기어가듯 그걸 제 품에 안고 붙들었다. ...지금의 제게도 그런 위안이기만 하면 뭐든 좋았다.)
 
아자릭:(물론 너는 쉽게 내어주던 적이 없었다. 모호한 대답을 듣고나선 더 물어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하는 것이 없다면 늘 그래왔듯이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알려주면 되는거니. 그 중에 네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 하나 쯤은 나오겠지.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이나 한다.)
선물이라고 하니까 떠올라서.
원하는 게 없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소원도 괜찮지. 너무 유치한 발상인가...싶지만, 형을 위한 선물인거니까.
(유품 정리 하던 중이었으니, 손이 필요하다면 도울게.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였는지, 그럴듯한 대답이 들려올 것 같지않아 테이블을 향해 먼저 나서 걸어간다.)
 
킬리안:그게 뭐야, 어린애 같아.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바람 새듯 웃어버렸다. 가질 것도 다 가졌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제게 너 같은 조그마한 동생이 이뤄줄 소원이랄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기분이라 괜히 간지러운 느낌에 멋쩍게 웃기만 했다.)
기억 해둘게. 아직 생일, 남았잖아.
(저는 여전히 거울 앞에 서서 상자라도 정리하러 가는 네 뒷모습을 본다. 아, 이런게 애정이구나. 나를 방심하게 만드는 것. 문득 깨닫는다. 너와 끌어안고 밤을 보냈던 그 순간과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혼자 정리하기엔 많을 텐데... (말을 이으며 네 뒤를 따라간다.)
 
:상자가 쌓여있는 테이블로 두 사람이 다가옵니다.
거의 정리가 끝난 빈 상자들을 옆으로 치우고 새 상자를 열려고 할 때쯤, 갑작스럽게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두 형제의 어머니가 들어옵니다.
 
어머니:아, 둘 다 여기 있었구나.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 단순한 걱정이 아닌 당혹감이 묻어납니다.
 
어머니:방에 가도 없길래, 걱정되어서...
 
:그녀는 슬쩍 아자릭에게 눈길을 줍니다. 그러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응접실 문 옆으로 비켜 섭니다.
 
어머니:짐이라도 정리하고 있었니? ...부지런하기는. 하지만 벌써 시간이 늦었구나.
슬슬 각자 방으로 돌아가렴.
 
아자릭:(시간이 이렇게 오래 흘렀던가. 아직 마저 정리하지 못한 상자들을 바라보다 어머니의 걱정이 목소리 뿐만 아닌 표정에도 보여 숙이던 허리를 다시 세운다.)
하던 일은 그만하고 내일 마저 해야겠어.
괜찮지? 어머니 말씀대로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넌지시 물었으나 걱정하는 제 가족이 있지 않은가.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저는 어머니의 말씀에 수긍한다.)
 
킬리안:(정리를 다음에 하자는 단순한 사실보다, 네가 저보다 어머니를 우선시 했음에 초점이 잡혀 낮게 깔린 질투심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체면은 있는 '어른'인지라, 그저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가 놓는 것으로 감정을 식혔다.)
그래. 이만 정리하자. ...시간이 늦었으니까.
(그리곤 어머니가 먼저 나가기를 기다리는 듯 남은 상자를 괜히 들었다 놓으며 정리하는 척 했다.)
 
: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작게 웃어주고는 먼저 응접실 밖으로 사라집니다.
방안에 흐르던 묘한 분위기는 문밖에서 불어온 찬바람에 씻겨나간 지 오래입니다.
킬리안을 쳐다보면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어머니가 나간 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기분이 드나요? 어머니에 대한 걱정? 며칠 간의 혹사로 몰려오는 피로감? 혹은…다른 생각들?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7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머니의 말대로 슬슬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자릭:(네 시선을 따라 저도 어머니가 떠난 문을 잠시 바라본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형과 어머니와 도저히 거리가 좁혀지질 않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상념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려 돌아가기 전 인사를 한다.)
...형.
피곤했을텐데 들어가서 푹 쉬어.
(나쁜 꿈은 꾸지 말고. 덧붙여 말하는 작은 바람은 소박했다. 발의 방향을 틀어 제 방으로 돌아간다.)
 
킬리안:잠깐, 아자릭.
(제 방으로 향하는 너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쉬이 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불안감을 애써 감추면서.)
...오늘은 각자 자?
 
아자릭:... ...응?
(가던 걸음을 멈추고 너를 돌아본다. 함께 잠들기 필요로 한건 하루가 아니었던가.)
같이 잠들어도 괜찮은데, 각자 자는 편이 좋지 않겠어?
(혼자있을 시간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으로 하는 말이었다.)
 
킬리안:네 방이 잠이 잘 와. ...뭔가 침구도 부드러운 것 같고. (대뜸 붙잡은 것이 낯간지러운 일이었음을 저도 의식했는지 변명을 늘어놓다, 이런 태도가 더 우습다는 것을 깨닫고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같이 있을래.
 
아자릭:(어머니가 말씀하시던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다. 오늘 아침처럼 오해를 살 일이 없었으면 하는데. ... 괜찮겠지. 가볍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럼 가자, 내 방으로.
 
:아자릭이 그를 허락하면 그는 안도의 미소를 띈 얼굴로 저를 바라봅니다.
타인에게 억지로 짓던 굳은 웃음이 아닌 편안하고 솔직한 미소는, 그것도 저를 향한 미소는 새삼스럽게도 처음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짧게 헛기침을 합니다.
 
킬리안:그래. 난 남아있는 상자만 마저 정리하고... 아.
(그러고보니 제 방에 옷을 가지러 네가 들렀다고 했던가. 문득 궁금해진다. 제 방에 서 있는 네 모습은 어떨까 하고.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는 너와 눈을 맞추고 말을 잇는다.)
오늘은 내 방에서 자자. 먼저 올라 가 있어.
 
아자릭:...아, 응.
(제 방이 잠이 잘 온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는걸. 네가 무안해 할 것이 뻔해서 굳이 정정하지 않고 수긍한다. 먼저 앞서 걸어나가며 나머지를 정리하고 있는 너를 흘끔 보다 네 방으로 향한다.)
 
킬리안:(...이쪽도 무안하기는 했다. 절박함에 앞서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해버렸으니. 그래도 진심이었으니까 완전한 거짓은 아닌 거다.)
어디에 있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지? (멀어지는 네게 괜히 한 마디나 건내고 상자를 마저 정리한다.)
 
:당신은 응접실을 뒤로하고 천천히 그의 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갑니다.
그의 허락을 받았음에도 어쩐지 긴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히려 허락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제 방이란, 타인의 출입을 불허하는 공간이었으니까요.
내쫓기다 못해 배신감에 물들어 제게 소리를 치던 어린 시절의 광경을 떠올려 보면 지금은 분명하게 그의 선 안으로 들여진 것이라고, 제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고야 맙니다.
방으로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면 아까와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여전히 [책장]과 [침대], [탁자]가 보입니다.
 
아자릭:(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기다리기라도 해야할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는 도중, 책장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는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책장 한편, 최근에 읽던 것들인지 이리저리 두서없이 쌓아진 책들이 보입니다. 윤리와 도덕에 관한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네요. 군데군데 성경책도 눈에 띕니다.
아자릭이 읽은 만한 책은... 다독가인 아자릭에게 어려울 정도의 책은 없는 것 같아요. 뭐든 뽑아다 읽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자릭:(윤리에 관한 서적을 꺼내든다. 적당히 읽을 만한 내용인지 가볍게 책을 넘겨보고 침대로 향한다.)
 
:평범하게 인간의 윤리와 도덕 관념에 대해서 개념부터 차근차근 설명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지루함에 하품을 할 지도 모르겠네요. 교과서적인 내용이니까요.
아자릭이 침대로 향합니다. 아까와 같이 단정히 정리되어 있는 시트와 베개가 보입니다. 별다른 것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면 그의 체향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킬리안의 방을 구경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그새 상자 정리를 다 한 모양인지 킬리안이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킬리안:(들어오다 멈칫, 묘한 광경이라는 생각을 하며 문 근처에 기대 섰다.) 어땠어? 들어와 본 소감은.
(자조하듯 웃으며 기댔던 몸을 일으키고는 가까이로 다가왔다.) 뭐, 네 방과 비슷하게 생겼겠지.
어머니께선 우리를 늘 같은 무게로 두기 위해 저울에 올려 두곤 했으니까.
 
아자릭:(분명 네 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입장일텐데. 그런데도 제 집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이 네가 도착한 탓에 들고 있던걸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그렇지.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하고 싶으셨으니까. 하지만 같은 방이라고 하더라도, 분위기가 이렇게 다른걸.
 
킬리안:...그래. 공평한 관계.
(분위기야 분명 다를 것이다. 저와 네 성격 차이만 해도 보지 않은 방 풍경이 뻔히 들여다 보이듯 했으니. 공평에서 시작해도 그렇게 달라지는 꼴이라니. 새삼스럽게 우리는 정말 정반대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속이 꼬였다.)
난 그 공평한 관계가 싫었어.
똑같이 생긴 방, 똑같이 생긴 옷,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부모 아래에서. …똑같은 가족으로 지내는 게.
(지금의 너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이다. 이제서야 꺼낼 수 있는 이전의 앙금에 대한 것.)
 
:억누른 분노와 화가 느껴지는 말씨는 어쩐지 매섭게만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소리에 작게 묻어든 물기가 알긴 했었냐며 저를 원망하는 것도 같아요.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오늘부터 너희 둘은 가족이란다.’ 통보에 가까웠던 부모의 목소리.
낯선 장소와 낯선 타인. 새로운 관계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경계심과 호기심,
교차하는 시선에 담긴 감정이 달랐던 어린 아이 둘….
 
:과거에서 깨어나면 갑작스레 그의 방에 단 둘만이 남아있다는 현재가 와닿습니다.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디서부터 너는 남이라고 생각했을까. 사실은 저와 어머니를 구분하고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최선이라는 노력으로 가족이라는 관계로 들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공평에 나쁜 의도 따위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
(자신의 어머니를 변호하고자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저는 제 형의 시선으로 살아오지 않았고,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이어받지도 않았다. 목소리마저 초라하게 들리며 네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었는지 느낀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은 '제가 관계를 좁히겠다고 내민 선의가 네게 기만처럼 느꼈을수도 있겠다'...라고.)
... ... 아직도 '가족'에 형이 소속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해?
 
아자릭:(조심스럽게 묻는다. 묻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으나, 직면하기로 택했다.)
 
킬리안:(살아온 환경, 장소, 관계가 같음에도 이다지도 틀어지게 되는 것은 역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정반대의 방향에 선 인간들이기 때문일까. 네게 저를 버리고 어머니의 편을 들겠다는 의도가 없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와 관련된 일이라면 쉽게 불안해지고 질투하게 되어서… 오해하고 마는 것이다. 비상하던 머리는 어디가고 들끓는 마음만이 남아 감정을 흔들었다.)
감히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의 편을 들지 마!
(버럭 내지르고 나서야 아차, 깨닫는다. 이것이 방금 전에 네가 물은 '가족' 과 '소속' 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너무도 솔직한 방법으로 인정해 버린 것이다. 순간 제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네 앞에만 서면 나는 자꾸만 치졸하고, 욕심 가득한,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려. 체념한 듯 한 풀 꺾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한 번도 질투해본 적 없었겠지. 내게 공평하게 대해주는 네 어머니 때문에, 나를...
내가 '가족' 이기 때문에.
 
아자릭:(언성이 커지면 놀란듯,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제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타인을 배척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은 가족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뜻이었다.)
난...
.... .... 미안해.
(말끝을 흐린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틀에 너를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든 것이 아닌가. 함께 했던 시간보다는 아니지만 태어난 환경이 다른 탓에 가족의 뜻이 다른 형태를 띄게 된 것이다. 차라리 재혼이 아닌 원래의 혈육이었다면 더 나은 상황이 왔을까?)
질투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누구든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나라도...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형.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달라. 버팀이 되고 싶기 때문에, 아끼고, 존중하고, 그 어떤 선택도 지지해주고 싶은 사람이 가족이었을 뿐이야.
 
아자릭:(첫 단추부터 잘못 되었다고. 자신 또는 어머니가 했던 행동이 오해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멀리 와버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무력함을 느끼게 되어버린다. 체념한 목소리가 들리면 네가 꼭 다시 동떨어지게 되어버릴까봐. 자신조차도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감정이 저를 숨막히게 했다.)
이런게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부를 수 있어...
 
킬리안:(때를 만난 이기심이 넘칠 듯이 흘러나온다. 온갖 부정적인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표현들. 아픔을 표현할 방법이라곤 우는 것 밖에 없는 어린 아이처럼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를 봐 줘, 나 정말 힘들었어. 나를 이해해 줘. 위로해 줘… 결국은 그런 것들이다. 속내를 들춰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담백한 감정들. 그런 것들이 너의 미안하다는 말에 수도를 틀어 잠그듯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한 순간에 뚝, 끊겨 버린다. 네가 저를 직면한다. 닿지 않던 말이,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이제서야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너를 원망하는게 나쁘지 않다고?
내가 아무리 이기적으로 굴어도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어?
내가 뭔데?
나 같은게 뭔데....
(헤어지기 싫어.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 예전으로 돌아가기 싫어. 네가 나를 안아주고, 나도 너를 안을 수 있다면 좋겠어. 한 순간에 주체할 수 없이 무너진다. 이런 소중함을 네가 부르는 가족이라고 한다면 제게 가족이라는 것은 오로지 너 뿐이라고. 네가 떠나갈 것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도 입은 솔직하게 진실을 고했다. 지금의 너라면 나를 이해 해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킬리안:난 이해가 안 돼, 아자릭.
너처럼 사랑 받고 자란 적 없어서, 대가 없는 애정이란건 모르겠어.
언젠가 다 괜찮아질까?
너를 희생 시키고 짓밟다 보면 언젠간 나도 사랑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까?
너를 그렇게 만들어서라도 내가 존중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감히 내가 어떻게 그래, 너 한테. ...넌 내 소중한... ....
 
아자릭:(나 같은게 뭔데. 그 울림에 끝내 묵묵해지고 만다. 제 표현하는 방법이 네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고 증명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건 제 신념이었지만 직접 확인을 받으니 그 신념마저 흔들릴 것 같았다.)
이기적으로 굴어도 돼. 원망하고 싶다면 형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래도 돼.
이유같은 건 없어. 소중한 존재라는 이유가 와닿지 않는다면 더는 설명할 길 또한 없을거야.
그저... 내가 허락했으니까. 정당화 될 수 없는 짓이라고 하지만, 나한테 만큼은 해도 돼.
(사람은 다르니까. 제가 별난 것일지, 네가 별난 것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은 포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저를 온전히 이해해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끝없이 맹목적으로 굴고, 자신이 상처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미련을 가지는 제가 오히려 더 이기적이지 않은가.)
정말로 다 괜찮아진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바라고 있어.
 
아자릭:애정에 이유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언젠가는 믿게 될 날이 올거라고. 그걸로 형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내 최선이 닿았다는 뜻이야.
(작은 불안감은 역시 제 행동이 너를 더 상처주는게 아닐까. 가슴 속에 작은 파편으로 자리잡았지만 아직은 무너질 때가 아니었다. 눈썹을 늘어뜨린채, 조심스레 네 손을 잡는다. 발끝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네 눈동자로 향한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은 그 어떤 누구도 내릴 수 없어. 내가 생각하는 형과, 형이 생각하는 형이 같지 않은 것처럼.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킬리안:(곧고 단단한 신념이 서려있는 네 눈을 마주 바라본다. 그 속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의 저가 서 있다. 제가 네게 이해를 바랬던 것과 같이 너 또한 제게 이해를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새삼스레 깨닫게 된 걸까. 정당화 될 수 없는 원망을 허락하는 그 목소리에 가슴 한 구석이 시큰거려 오면서도 한 편으로 안심하게 되었다면. 잡힌 손 끝을 내려다 본다.)
(네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웃기지도 않지. 우린 어릴 적 부터 그랬어.
네가 일방적으로 날 따라다니고, 난 네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기억 나? 이 방에 널 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거.
(제가 널 방에 들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어릴 적의 제게 말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몇 번이나 거절 당하고 밀쳐지던 네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실은 그래, 이게 바로 이유이고 증명이지 않을까. 꼭 구체적인 형태가 필요했을까. 결국은 네가 보여준 십 몇 년의 시간과 기억이 그 자체로 증명인데. 더 나아가선 증명이라는 것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너의 존재 자체로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반사적인 감각처럼.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처럼...)
 
킬리안:이제와서 내가 널 소중히 한다는 게 결국 위선일 뿐인데도, 내가 너를 의지해도 된다면...
(닿은 손끝을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얽어 잡는다. 조심스러움은 이내 간절함으로 변하고, 어느새 힘이 들어간 손은 잘게 떨며 네 손을 깍지 껴 잡았다. 네게 소리치고 감정을 토해내는 것 보다 이 편이 더 와닿을 것 같아서.)
(결국은 이 모든 행동들이 널 소중히 하는 마음이었다고.)
 
아자릭:기억 나. 형의 공간에 누구든 들이고 싶지 않았잖아.
(네가 직접 초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멋대로 들어온 때는 굳이 떠올리지 않으려 든다. 처음 만남에 네가 저를 보고 지었던 눈빛의 의미는 멀지 않게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붉은 눈동자에 담긴 거절을 저는 수없이 봐왔다.)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될 수도 있다. 어쩌면 평생을 들여도 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는 더 노력을 하자. 깍지 낀 손을 통해 떨림이 느껴지면 저도 힘을 약하게나마 싣는다. 변하지 않는 것 중에 너 뿐만이 아니라 자신 또한 멈춰있을거라고. 보조개가 드러날 정도로 미소짓는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자. 저를 믿어준 네가 편하게 의지할 수 있도록.)
나는 진실로 여기겠지. 형이 위선이라고 해도 내 진심은 조금이나마 닿았구나.. 하면서.
 
킬리안:그래. 네가 첫 손님이야. 내가 허락한 건.
(아버지조차 들이지 않았던 나만의 공간. 외부에서부터 나를 격리하고 혼자만이 존재하고 있었던 곳. 단순히 육체가 존재하는 공간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는 제 아버지의 대체제였을지도 모른다. 한 순간에 다가온 상실에 어디라도 좋으니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바보같기는, 진짜 위선자는 나야. 너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괜찮다고 말해줬다. 진심이 닿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한다. 과분할 정도로 따뜻한 사람. 가족, 형제, 내 동생. 아자릭…)
다행이다. 네가 내 가족이어서. 내가 네 가족이 될 수 있었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신이 우리에게 서로를 내려준 것은 시련이었을까 구원이었을까.
어쩌면 절망을 희망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운명을 바꾼 것이다. 지독한 악연으로만 남지 않게끔.
 
킬리안:그것은 신도 해낼 수 없는, 오로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널 만나서 다행이야.
 
아자릭:(이 방에 초대받은 첫 손님. 어딘가 이상한 말이었는데도 저와 너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굳게 문을 닫고 다니는 네가 직접 문을 열어준 것은 이번이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 그런 낙천적인 생각 또한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겠다고.)
나 또한 형을 만나서 기뻐.
형은... 내 소중한 사람이니까.
(여전히 어머니가 말한 감정에 대한 것은 알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너를 만나서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너로 인해 책임을 알고 지키는 방법을 알게되었다. 행동의 위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음을, 자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네가 자신을 낮추지만, 너로 인해서 저는 배워가고 조금 더 신중히 다루는 법을 배웠다. 제 유일한 결점을 채워넣는 것이다.)
(...피곤하겠다. 대화를 마무리하며 분위기가 이전보다는 나아졌음을 느낀다. 오늘 하루는 네게 고된 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너를 세워두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린다.)
 
킬리안:(소중한 사람이라는 말. 몇 번이고, 몇 년이고 들어온 그 말인데도 이제서야 진심으로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는 늘 한결 같았다. 변한 것은 저 뿐이다. 닫았던 문을 연 것 그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네게 이해 받기 위해선, 결국은 내가 너를 이해 하는 게 먼저였다는 것을.)
나도 네가 소중해, 아자릭.
(이 말을 돌려주고 싶었다. 네가 그래왔던 것처럼 솔직한 제 진심이 닿길 바랬다.)
네가 내 곁에서 행복했으면 해.
(내가 그렇게 할게.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굳은 다짐이 담긴 눈으로 널 바라봤다. 잡았던 손을 쉬이 놓아준다. 이제는 굳이 붙잡지 않아도 네가 멀어지지 않을 것을 아니까. 어깨에 놓인 무게에 말하지 않아도 다정한 네 의도를 알 것 같아서 작게 웃고 만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자 안정감이 몰려와 여느 때 같은 어리광을 부린다.)
...졸리네. 너무 피곤했던 것 같아.
 
킬리안:(그래, 수 년 동안.)
 
:킬리안이 먼저 침대로 가 단정히 정리된 시트 위로 몸을 뉘입니다. 그리고는 따로 말을 건네지도, 눈짓을 주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연히 제 옆으로 와줄 것을 안다는 것 처럼요.
아까보다 시간이 지나 어둠이 가라앉은 방 안이 그리 차갑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언젠가는 이 방에서 홀로 잠에 들며 외로워하던 남자가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아자릭이 곁으로 가 침대에 눕고 나면, 킬리안이 그를 끌어안고 잠을 청합니다.
꿈 없는 밤이 둘을 기꺼이 끌어안습니다.
 
.
 
───────────────────
 
.
 
:...
몽롱한 의식 사이로 아자릭은 실눈을 뜹니다.
차가운 공기가 아직 새벽임을 알려줍니다.
손을 뻗어 옆자리를 더듬으면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뜨거운 체온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킬리안이 없습니다.
그는 이 한밤중에 어딜 간 걸까요?
 
 ✷ 듣기 판정 ✷ 
 
아자릭: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문득 방문 너머에서 작게 다투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남성의 목소리와 당황한 듯한 여자의 목소리.
이내 쿠당탕, 하고 무언가 구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습니다.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잠깐의 정적 후 누군가 흐느낀 것 같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지?
하지만 눈꺼풀이 다시 감겨옵니다.
 
:그간 너무도 피곤했기 때문일까요,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수마를 뿌리칠 수 없습니다.
다시 수면 아래로 빠져들어 갑니다.
 
.
 
───────────────────
 
.
 
:여전히 태양은 보이질 않고 우울감만 가중하는 빗소리가 당신의 아침을 반깁니다.
적막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온 저택이 소란스럽기 그지없군요.
무슨 일이라도 난 걸까요? 불안감이 몸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릅니다.
당신이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면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어젯밤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킬리안,
 
:아, 그래, 킬리안과 함께 잠을...
고개를 들어보면 방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제 침대 옆의 온기는 싸늘하게 식어 있습니다.
 
아자릭:...으음.
(아직 잠에서 덜 깬 정신으로 몸을 일으킨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혼자라는 것이고 본래 있어야 할 이 방의 주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일어났을 때 제가 없으면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소란스러운 저택의 분위기를 감지한건지 꿈결에 있었던 일이 스쳐지나간다.)
(방 안에는 없는건가? 정신 없는 상황에도 부스스한 상태를 정돈한다.)
 
:여전한 풍경의 방 안에는 아자릭만이 남아 있습니다.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자릭:(무슨 일이라도 벌어진건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주변을 살피며 밖으로 나가본다.)
 
:채비한 후 방 밖으로 나서면... 하얗게 질린 사용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택을 누비며 온종일 바쁘게 보내야 할 이들이 고장 난 것처럼 중앙 홀을 내려다보기만 합니다.
그들을 따라 중앙 홀,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제 어머니가 보입니다.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붉은 피가 흥건합니다.
 
:끊어진 목걸이의 진주 알들이 피바다 속에 점점이 보입니다.
바로 어제 자신에게 다정하게 웃어주던 이와는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고… 당신은 멍하니 생각합니다.
 
 ✷ 이성 판정, 이성 ✷ 
 
아자릭:
SAN Roll
기준치: 77/38/15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감소 -1
 
:당신을 뒤따라온 사용인들이 당황한 듯 손을 뻗어 당신을 제지합니다.
보지 마시라며,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들이 들려 옵니다.
 
아자릭:이, 이게... 어떻게 된...어머니가 왜...
(너무 놀라면 눈 앞이 하얗게 점멸한다고 하던가. 검은 머리카락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으며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손은 더이상 온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졌다. 어제만 하더라도 함께 식사를 같이했는데도 잘 잤냐고 물어봐주던 목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저를 제지하는 사용인들을 밀어내며 어머니께 다가가려했다.)
(제대로 힘을 주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두어걸음을 걷다 다시 앞을 가로막힌다. 제발, 이건 꿈이라고 몇 번이고 되내이며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한다.)
아... 아아..
(표정이 점차 일그러진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건지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가 불편했다.)
 
:어머니의 충격적인 모습을 다시 흐려지는 시야에 담습니다.
 
 ✷ 관찰력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더이상 마주할 자신이 너무나도 없었다. 눈을 질끈 감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녀는 계단에서 심하게 구른 것 같습니다. 휘청이다 넘어지신 걸까요? 혹은 누군가가...?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자 속에서 왈칵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사용인1:도련님, 괜찮으세요? 보지 마셔요. 여기는 저희가...
 
사용인2:주, 주인님께선 저희가... 흑, 어떻게 해야 해?
 
사용인3:도련님께서 들으시잖아! 목소리 낮춰/
 
아자릭:아... 아윽...
(자꾸만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는다. 목이 매인것처럼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없는데도 답답한 느낌에 가슴을 움켜쥔다. 제 어머니가 부주의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실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늦은 밤에 저택을 돌아다닐 이유도 더더욱 없었다.)
... ... ....
(계속해서 부정해보지만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은 제 형이었다. 설마, 형에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건 아니겠지. 은연중에 어젯밤의 다투는 소리가 자꾸만 떠오른다. 혼란스러운 사용인들 사이에서 눈물젖은 얼굴로 나지막하게 묻는다.)
... ...형님은?
 
사용인2: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일을 할 시간이 되어 로비로 나왔을 뿐인데, 주, 주인 마님께서 이미 이렇게…
 
사용인1:그,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 큰 도련님은 뵙질 못했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으신 것 아닐까요?
 
사용인3:나, 새벽에 큰 도련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 ...착각이겠지?
 
집사:그만! 쓸데없는 추측은 삼가라. 계속 이 찬 곳에 주인님을 눕혀 둘 참이냐?
 
:그러고는 집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집사:도련님, 일단 방으로 들어 가서 마저 말씀 하시지요. 충격이 크실테니.
 
아자릭:(어떤 불안감이 자꾸만 제 생각을 좀먹기 시작한다. 형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용인의 증언, 외면하고 아니길 바랐던 불안감이 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눈물이 마를 새 없이 이유 모르게 턱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튀어나오지 못한 말을 삼키고 어떤 긍정이나 부정을 하지 않은채, 집사에게 작게 중얼거린다.)
아니. 형님을 찾아야겠어.
당장.
(이제는 하나만 남았다. 제가 더 지킬 사람은... 제 형을 찾고자 하는 이유가 과연 무사한지 걱정되어서일지, 확인을 위해서인지 모를 일이었다.)
 
집사:도련님! (다급한 목소리로 크게 제 작은 주인을 불렀다. 한낯 사용인이 큰 소리를 내자 주변인들이 이쪽을 돌아 봤다.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둘만에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다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침착하셔야 합니다.
…큰 도련님의 방에서 나오셨지요. (다 알고 있었으나 침묵했다는 듯한 그 진중한 눈빛이 너를 바라본다.) 방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아자릭:...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계속되는 상념이 일순 끊긴다. 그제서야 모든 이목이 저와 집사를 향해 몰려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짧은 침묵을 유지하며 집사의 말을 듣는다. 그와 동시에 사용인들을 향해 흘끔,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감히 바라보지 말라고.)
... ... 아니.
형님은... 깨어났을때 방에 계시지 않았어.
괜찮으신지 안위를 확인해야하니까.
(그러니 찾게 된다면 바로 내게 일러. 평소답지 않은 말투였다. 집사 덕분에 이성을 조금이나마 차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손을 뻗어 집사의 어깨를 붙잡고 귓속말한다.)
 
아자릭:쓸데없는 소문 퍼지지 않게 조심하고. ...고생해줘.
 
집사:(작게 한숨을 쉬었다. 연달아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에 저도 혼란스러운 듯 이마를 잠깐 짚었다가 손을 떼었다.) 알겠습니다. 뒷수습은 제가 해둘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할 일을 끝마치시길.
... (그렇게 뒤도려는 찰나 무언가가 생각난 듯 아차하며 운을 뗀다.) 도련님, ...하나만 더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인으로서, 아니. ...당신의 곁에서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한 말씀 감히 올리고자 합니다.
…사용인들이 수근거리더군요. 하늘이 노해 이 저택에 폭우를 쏟고 생명을 앗아가는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저는 전부 다 헛소문이라는 것을, 도련님과 주인 마님이 그런 저주를 받을 분들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도련님, 저는… …도련님께서 혼자서라도 도망치셨으면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면 사라진 큰 도련님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집사:하지만, 도련님을 모시는 하인으로서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저는 너무나도 의심됩니다.
그 붉은 머리가, …보고만 있는 것으로도 불길해져서.
(작게 또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옥죄는 듯 자꾸만 답답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저는 누구보다도 그 붉은 머리의 사내들을 잘 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때 부터 그들을 옆에서 지켜봐왔으니. 그는, 제 큰 도련님은 어쩌면 너무나도 많이 뒤틀려 버린 것이 아닐까. ...제 작은 도련님과 큰 도련님 사이에 어떤 교류가 오갔는 지는 몰랐기에, 과거만을 봐왔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감히 충고드렸습니다. 불러 세우는 무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자릭:... ...
(제가 수면 위로 꺼내지 않았던 불안감의 원인이 자꾸만 떠오른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모시고 저와 형을 지켜본 사람이지 않은가. 어떤 이의 발언도 허투로 넘기지 않을 성격이지만 그가 말하는 것을 더이상 귀담아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저를 위해서라도 그러지 않는게 좋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아니지. 아닐거야. 자신의 형이... 바닥을 때리는 빗방울의 소리가 이제서야 크게 들린다. 폭우 속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던 우리. 그리고 숨기지 못한 입꼬리..)
걱정은 고맙지만, 지나쳐.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일 따위는 선택하지 않아. 지켜봐온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
... ...그것과는 별개로 진위는 밝혀야겠지.
(헛소문은 신경쓰지 말아. 당신이 흔들리면 사용인들도 불안해하기 시작할테니. 집사에게 유념하라 이르고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바라본다. 그리 길지 않게 시선을 거두어 자리를 떠난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있었고 모든 의심이 제 형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직접 마주해야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
 
:당신의 말을 서서 끝까지 듣고 난 집사는 이해했다는 듯이 작게 몸을 숙이고는 돌아서서 다른 사용인들을 정리합니다.
그에게 뒤를 맡기고 아자릭은 돌아섭니다.
…킬리안은 어디로 간 걸까요?
 
(지능 판정 가능하나 롤플레이로 추리하셔도 됩니다)
 
아자릭: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문득, 그가 빼앗아가려 했던 서재의 서류 봉투를 기억해 냅니다. 아자릭은 그것을 확인했던가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안감과 의심이 밀려 들어옵니다.
그는 그걸 왜 숨기려고 했던 거지?
 
아자릭:(... 그저 발이 가는 대로 걷던 걸음이 점차 빨라진다. 몇걸음 걷지 않아 달리며 서재로 향한다.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기 시장한다.)
 
:무겁고 눅진한 향이 온 저택을 휘감는 와중에 서재만은 예의 아릴 듯이 달짝지근한 향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재의 붉은 벽지를 쳐다보자 향기에 진정되었던 토기가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아 당신은 황급히 시선을 돌립니다.
높은 천장에서 아른거리는 금 촛대도, 위압적으로 방을 채운 책장도... 전부 그대로입니다.
지난본에 본 사과 조형물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브처럼, 저것을 본 후로 당신 속의 무언가가 망가지기 시작했단 근거 없는 생각이 듭니다.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의 주위엔 [탁자]와 [책장], [액자]가 존재합니다.
 
아자릭:(찾는 것은 하나. 기억을 더듬으며 탁자 위를 살펴본다.)
 
:푹신해 보이는 소파 옆에 자리 잡은 탁자입니다. 사과 조형물이 놓여있는 상단에는 조화가 꽂힌 화병도 하나 보입니다. 그 아래로는 3개의 서랍이 눈에 띕니다.
아자릭이 찾던 것은 세 번째 서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자릭:(세 번째 서랍을 열어 서류 봉투를 찾는다. 진위에 점점 가까워지면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자꾸만 두려움을 느낀다.)
 
:봉인이 뜯어진 갈색 서류 봉투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이전에도 읽을 기회가 있었으나 킬리안의 난입으로 읽지 못했던 것이죠.
그가 영영 치워버린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속에서 하얀 종이를 꺼내면, 그 위에는 당신이 잘 아는 사람의 유려한 필체로 짤막한 한마디가 적혀있습니다.
 
뒷수습을 부탁한다.
 
:그 아래에 간결한 답신이 보입니다. 심부름은 잘 끝냈습니다.
 
 ✷ 이성 판정 ✷ 
 
아자릭:
SAN Roll
기준치: 76/38/15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감소치 없습니다
 
아자릭:... ...하..
(어떤 뒷수습? 긴장한 나머지 숨을 참았는지 한숨섞인 호흡이었다. 알 수 없는 말로만 적혀있어 그 어떤 근거에도 뒷받침을 해주지 않을 내용이었다. 서류를 들고 있던 손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든다. 시선이 닿는 곳은 액자였다.)
 
:역대 가주들의 초상화와 그의 가족들의 초상화입니다.
가족 모두를 그려 넣은 단체 초상화도 가끔 보이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초상이 여러 개 걸려있네요.
이젠 모두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초상도 보입니다.
그 아래로는 지금보다 어딘가 어려 보이는 킬리안과 아자릭의 초상화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자릭:(지금보다 앳되어 보이는 킬리안의 초상화를 바라본다. 그림에 보이는 적색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탄식 끝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다른 수상한 점은 없는지 책장을 살펴본다.)
 
:문학부터 과학, 예술, 경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습니다.
금박, 은박,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이사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책등이 노랗게 삭은 고서들도 보입니다.
다른 특별한 것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지능 판정 ✷ 
 
아자릭: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지러운 머릿속으로 하나둘 천천히 정리해봅시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아버지는 실족사로 죽은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의심이 가는 구석이 너무도 많았으니까요.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를 죽인 범인이 있다면 추측되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래요. 아자릭은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순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기를 막으려고 진심으로 노력한 것도 사실이에요.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 정신력 판정 ✷ 
 
아자릭: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끝내 부정해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이 모른척 묻어두었던 사실들이 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지금도 일말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를 비워내는 중이었다. 형, 아니야. 형만은... 그런 짓을 벌여서는 안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킬리안과 아버지의 관계는, 뒤틀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롯이 증오로만 이루어져 있던 것이 아니었어요.
분명히 방아쇠가 되는 사건이 있었을 겁니다. 혹은 증거라던지요.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더 있다는 직감이 강하게 듭니다.
그가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면, 만약, 혹시나,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면,
그 자취를 쫓아 그가 있는 곳을 알아낼 수도 있다면…
 
:…첫 단추를 꿰어 봅시다.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
그렇다면 아버지의 방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자릭:(자신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곳. 감히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곳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행동으로 따른다. 아버지의 방으로 향해 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서재에서 빠져나와 아버지의 방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주인 분의 침실이 서재인지 이 곳인지 도통 모르겠다니까. 사용인들이 먼지 쌓인 침실을 정리하며 자기들끼리 소곤대던 것을 기억합니다.
. 이 저택에 온 지도 몇 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보단 불안감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킬리안이 이 방의 물품을 정리한다며 상자를 가득 가져갔었죠.
방 한편의 책장 사이사이 공간이 보이는군요.
 
:탁자 위로는 쌓아진 상자 더미도 보입니다.
일전 응접실의 것보다 그 양이 적어보는 것이, 아마 필요한 것들만 이쪽으로 옮겨둔 것 같군요.
상자 더미 속에 유독 눈에 띄는 [하얀 상자]와 [붉은 상자], 그리고 [검은 상자]를 발견합니다. 책상 옆의 자그마한 [금고]도 보이네요.
 
아자릭:(아버지의 방에 처음 들어온 때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라니. 그 이유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 허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드문드문 정리가 되어있는 흔적을 보고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우려만 들었다.
상자 더미 속을 살펴보다 색이 있는 상자들을 꺼내놓으려다 멈칫, 하던 행동을 멈춘다. 짧은 머뭇거림 끝에 하얀 상자를 열어본다.)
 
:광택이 도는 하얀 상자입니다. 상자를 열어보면 후원 명세서, 라고 적힌 서류뭉치가 보입니다.
 
친애하는 -각하,
 
귀하의 후원으로 성 -고아원 아이들의 삶이 더욱 윤택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후원하던 고아원에서 온 후원금 사용 보고서인 모양입니다.
그의 많고 많은 업무 중에는 대외적 위신을 위한 후원 활동 또한 있었지요.
퍽 놀라운 소식이 아닙니다.
아자릭이 다른 서류를 찾아보면 그 사이로 짤막한 편지 하나가 툭 떨어집니다.
 
이번에 일손이 부족하단 소식 들었습니다.
 
필요한 아이는 몇 명입니까?
 
일전에 보낸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공사다망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 아이들의 안부 소식을 한 줄이나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당신이 이 저택에 들어온 이후로 저택의 일손이 부족하단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편지를 보자면 분명 한두 명 데려간 것이 아닌데, 도대체 그 많은 아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이 저택에서 아이의 흔적이라곤 머리칼 한 올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자릭:그럴리가.
(마주쳤더라면 제가 기억했을테다. 이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사용인의 얼굴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으니. 이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제 아버지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있던건가? 알아선 안될 것을 아는 기분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한 채, 붉은 상자를 열어본다.)
 
:짙은 적색의 종이상자입니다.
상자에는 아버지가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대부분이 단조로운 흑백 그림이 그려진 엽서로군요.
아자릭이 엽서를 주워 읽어보면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친애하는 사제님. 선물해주신 조형물은 잘 받았습니다.
 
향이 아주 좋더군요. 서재에 둘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러고 보니 신도 중 —백작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자는 교단을 이용하기만 할 간악한 자입니다.
 
교주님께 간언을 드리고자 하는 말이니 다른 뜻이 있노라 생각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제님, 제 이성이 이리도 얄팍한 줄은 몰랐습니다.
 
부디, 하루빨리 제게 구원을 주십시오.
 
그녀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저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시길 바랍니다, 형제님. 교주께서 당신의 신심을 인정하셨습니다.
 
마지막 제물만 있다면 이제 당신도 영원의 소유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걱정 말고 공물을 준비해주십시오. 세 명이면 충분합니다.
 
세 명.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직접 눈으로 읽었음에도 내용이 하나도 이해되질 않습니다.
 
 ✷ 이성 판정 ✷ 
 
아자릭:
SAN Roll
기준치: 76/38/15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사라져버린 아이들. 그리고 공물이라 칭하는 세 명. 편지 내용이 더는 읽히지가 않았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불렀던 남자는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었던거지?)
 
이성치 -1d2
 
아자릭:2
 
:남은 것은 [검은 상자]와 [금고]. 더 파해칠 진상이 남아 있을까요? 아자릭은 은연중에 불안함을 느낍니다.
 
아자릭:(검은 상자를 들기 위해 내민 손이 잘게 떨린다.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었고 혼란스러움만 가중된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기에 끝내 상자를 집어 든다.)
 
:흑단으로 짜인 상자입니다. 별다른 장식이 없던 다른 상자들과 달리 이것은 유달리 화려한 금박으로 치장되어 있네요.
상자를 열어보면... 킬리안의 방에서 봤던 그 초상화 액자가 들어 있습니다.
액자 밑으로는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보낸 듯한 편지 여러 장도 발견됩니다.
내용은 다 다르지만, 한 여성의 필체로 누군가에게 감정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편지는 일부가 찢어져 있기도 하고, 젖었다가 마른 것인지 우그러져 있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한 편지의 뒷 장, 아자릭에게 익숙할 남성의 필체로 쓰인 글씨가 눈에 띕니다.
 
기만자.
 
:이 외에 특별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자릭:(아버지라는 사람이 다시 보고 싶어하는 인물을 떠올린다. 한 가족의 초상에 자신이 모르는 어떤 여인이 그 대상일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편지의 뜻은 더더욱 알지 못해 상자를 덮어두고 금고를 살펴본다.)
 
:무릎 조금 아래까지 오는 작은 금고입니다. 금고는 단단히 잠겨져 있습니다.
 
아자릭:(금고에 대한 단서 따위는 여전히 들지 않는다. 방 안을 둘러보며 금고를 열만한 도구가 있을지 살펴본다.)
 
:주변에는 일반적인 방에 있을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옷장, 침대, 서랍, 화병, 책상... 의자 같은 것들이요.
 
아자릭:...
(망설임은 없었다. 눈에 의자가 들어온 순간, 곧바로 집어들어 금고 쪽으로 가져온다. 의자 다리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두 손으로 의자를 머리 위까지 들어올려 금고를 내리친다.)
 
 ✷ 근력 판정 ✷ 
 
아자릭: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금고와 의자가 부딪히며 내리친 충격이 그대로 손을 타고 전해졌다.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더이상 내려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때까지 다시 한 번 내리칠 생각으로 등받이를 단단히 잡는다.)
 
 ✷ 근력 판정 ✷ 
 
아자릭: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의자를 들어 금고에 힘껏 내리쳤습니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단단한 금고의 문이 큰 충격에 찌그러지더니 결국 비틀리며 미끄러지듯 열립니다.
금고 안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자릭:(금고가 열린 것을 확인하고 의자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푼다. 얼마나 강하게 힘을 주었는지 창백하게 질린 손이 피가 돌며 붉어진다. 의자를 옆에 치워두고는 금고 안을 살펴본다.)
 
:열린 금고 속에는 가죽 핸드가 인상적인 리볼버 한 정이 들어있습니다.
 
아자릭:(... 금고에 있을 법한 물건이기는 했다. 리볼버를 쥐고 가볍게 살펴본다. 탄환은 들어있나?)
 
:총알은 딱 하나, 장전되어 있군요.
부러진 가늠쇠, 긁힌 자국이 난 총신에서 불길하게도 사용감이 느껴집니다.
...
방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는 모두 찾은 것 같습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당신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단서들이 이어진 점에 킬리안, 제 형이 있다는 것을요.
 
아자릭:(어쩌면 저와 어머니는 이방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형의 아버지, 사망한 형의 어머니. ... 사제라는 사람이 선물했다는 조형물. 불길한 기운이 겉도는 것이 그저 기우가 아니었다. 손에 들린 리볼버를 내려다보며 꾹 쥔다. 제 형이 이 일을 모두 알고 있을까.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킬리안이 이 진상을 몰랐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야, 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한 것도 그였으니까요.
다만 이 사실을 아버지의 사망 전에 알았던 것인지, 후에 알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자릭이라면 은연중에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가 아버지의 사망과 관련이 있는 거라면, 되짚어 나아가 이 일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면...
 
 ✷ 이성 판정 ✷ 
 
아자릭: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감소치 0
 
:...이 방에선 더이상 볼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시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자릭:(...이쯤이면 정리되었겠지. 제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수습했을 것이라 여겼다.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로비로 다시 향한다.)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잡고 로비로 나오면 그새 사용인들이 수습을 했는지 어머니의 시신은 사라져 있습니다.
아직 마저 닦아내지 못한 핏자국들만 바닥에 어지러이 흩뿌려져 있을 뿐입니다.
 
 ✷ 관찰력 판정 ✷ 
 
아자릭: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머니가 싸늘하게 쓰러져있던 모습이 자꾸만 보이는 기분이었다.)
 
:늘어진 핏자국들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한 가지를 눈치 챕니다.
구두 밑창의 형태로 찍힌 발자국이 섞여 있다는 것을요.
그 자국을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들리고, 눈 앞에는 정원으로 나가는 대문이 보입니다.
바닥을 정리하던 사용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 누군가가 정리를 하다 말고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할까요.
어떤 직감이 듭니다.
 
아자릭:(그 흔적을 따라 홀린듯이 저도 따라간다. ...제가 생각하는 이가 차라리 없었으면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핏자국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옵니다.
이른 새벽, 어느새 쏟아지던 폭우는 그치고 안개만이 얕게 깔려 있습니다.
이제 막 떠오른 해가 짙게 깔려있던 구름 사이에서 은은하게 주변을 비춥니다.
물기에 적셔진 잔디들을 차박차박 밟고 지나갑니다.
시간이 갈수록 말라붙어, 점점 흔적을 남기지 않아간 발자국을 겨우 따라가다 보면 저택 근처의 바닷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정처없이 그저 발걸음이 가는 대로, 앞만을 본 채 다리를 이끕니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각 하고 있다는 듯이.
한참을 걷다 발걸음이 우뚝 멈춘 곳에는 오랫동안 사람이 찾아오지 않은 것만 같은 높고 험한 절벽이 하나 보입니다.
오랜 기간 쏟아져 내린 비에 몸집을 부풀린 파도가 바위 아래에서 부서집니다.
위태롭게 튀어나온 절벽 근처, 제가 찾던 익숙한 뒷모습이 보입니다.
어떤 결심을 한 것만 같은 단단한 뒷모습이.
...
 
:킬리안이 고개를 돌리면 굳은 의지가 담긴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의 뺨에는 피로 물든 손자국이 길게 번져 있습니다.
단호해 보이는 그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다면 제 착각일까요.
 
아자릭:...형.
(그토록 찾던 이었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당신을 가리키고 당신과 연관된 아버지를 가리켰다. 차라리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목놓아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그를 보자마자 이대로 절벽에서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왜? ...위험하게 왜 거기 서있는거야.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마치 처음 안 소식을 알려주는 것처럼. 뺨에 피로 문든 손자국까지 있는데도 못본척 허망하게 너를 바라본다.)
 
킬리안:...아자릭.
(핏자국이 튄 옷, 붉은 물로 흥건하게 젖어버린 손바닥, 적어도 제가 그 현장에 있었음은 분명한데도 너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듣지 않은 척, 말하지 않는다. 이런 너에게 내가 진실을 고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매정하게 굴어도 되는 걸까. 네가 소중하다는 이유로...)
...어떻게 찾아 온거야? 여긴 나만 아는 곳일텐데. (그렇겠지. 여긴 그 일이 있었던... 속으로 삼키며 절벽 아래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쓰게 웃었다.)
 
아자릭:... ...형이 찾아달라고 흔적을 남겼잖아.
(허탈한 웃음을 흘린다. 아니 웃음이 맞을까.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몰랐다. 온 신경이 네게로 쏠려있어 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너는 그저 흔적을 처리할 생각 조차도 못했겠지만 그저 느낀대로 말한다.)
내가 모르길 바랐더라면 잘 숨겼어야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게 아니라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라도 지어야하잖아.
(...대답해. 원망하지 않으려 했다. 네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처절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킬리안: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겠어.
(저도 결국은 사람이다. 깊고 아득해 보이는 짙은 색의 바다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너와 시선을 마주한다. 저 얼굴이 담고 있는 감정은 원망일까. 혹은 배신감? 이젠 저를 향하던 소중함도, 애정도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네 예측이 결국 진실이었다고 내가 대답한다면. ...어떤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너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었으므로.)
내 실수야. 끝까지 모르길 바랬다면 좀 더 철저했어야 했어. 너만은 아무것도 몰라야 했어.
네가 홀로 남겨지더라도 결국은 괜찮아질 거라고 굳게 마음 먹어야 했는데....
...나는 강한 사람은 못 되나 봐.
 
아자릭:(왜 내게 먼저 말해주지 않았어? 목에서 튀어나오려던 말을 가까스로 삼킨다. 가족이라고 해주었잖아. 내가... 소중하다고 말했잖아. 진상을 먼저 알게 된 시점을 탓하기에는 너는 저를 멀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돌고 돌아 불안한 기류를 다잡으려 하지 않았던 제 잘못이라는 결론으로 향한다.)
...왜 내가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해.
대체 나를 어떻게 보는거야. 나도 ...평범한 사람인데.
(가족이 있으니까 이겨낼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제 어떻게 이겨내라는거야? 나지막하게 묻는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감정이 실렸다. 강인한 척, 무너지지 않는 척을 해도 저도 넘어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너로 인해 한 번 넘어졌으니, 제가 어떻게 될지 단 한번이라도 예상해본적이 없을까.)
 
킬리안:평범한 사람이니까, 꺼리기 마련이잖아. 부모를 죽인 형제 같은 건.
...아무리 내가 소중했더라도.
(이해 받고 싶지 않아. 중얼거림에 가깝게 내뱉었다. 소중하다는 이유 만으로 날 정당화해선 안 돼. 처음으로 제가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했다. 여전히 저는 외롭고 싶지 않았다. 곁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가족으로 여긴 우리의 아버지를, 네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우리의 어머니를 제 손으로 떠나보낸 일이... 그것에 어떤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이해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날 찾아온 걸 테니.
 
아자릭:왜...
(여기까지 왔는데도 알고 싶지 않았다. 진실을 듣게 된다면 어떤 생각으로 널 마주해야될지 모르겠어서. 두려움 때문에서라도 말을 잇지 못하고 뜸을 들인다.)
... 왜 어머니를 죽인거야.
(너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겠지, 싶은 가정까지도 떠올렸다. 그러니 네 말을 우선적으로 들어야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킬리안:(너라면 그걸 제일 먼저 궁금해 할 것 같았다. 상식적인 사고다. 누가봐도 살인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저와 소중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본다면. 그래, 소중했던 어머니. 우리의... 너의 가족.)
'왜' 라는 이유가 중요할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그게 내 손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도.
(똑똑히 새겨 들어. 그렇게 말하는 듯한 단호한 눈빛에는 깊은 서글픔이 우러났다.)
이제 와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변명에 지나지 않아.
(이유를 말하지 않더라도 너는 저를 믿어줄 수 있을까? 순간 망설임이 들었다. ...네 믿음을 시험해도 괜찮을까.)
 
아자릭:내가 왜 형에게 이유를 묻고 있겠어.
그렇게 해서라도 믿고 싶은거잖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슬프지만,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제발, 변명이라도 좋으니 말해달라고. 단호한 네 태도에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제는 형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것마저 빼앗아버리면 어떡하라는거야...
 
킬리안:(저 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 말에 쓰게 웃는다. 제 곁에 남아 있어 달라고 할 땐 언제고 도망치려는 꼴이라니. 행복하기만을 바랬던 제 동생이 저 때문에 감정을 쏟아내고 울음을 뱉고 있다. 제 모습을 지켜 봐온 네 심정도 이러했을까. 반사적으로 뻗어지려던 손을 무르곤 절벽에 가깝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자릭, 난...
(단호했던 표정이 일그러지고 솔직한 감정이 우러 나온다. 역시 헤어지기 싫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어떤 변명을 늘여 놓아서라도 네 곁에 있고 싶었다. 저를 원망하게 내버려 둬야 했는 데에도…)
단순한 사고였다고 말하면 날 다시 받아들여 줄 수 있겠어?
네게 소중했던 어머니가 그렇게 떠났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잘해보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이거였다고 해도.
 
아자릭:(아슬아슬한 위치에 서있는 상황이 마치 네가 위태로워 보였던 그때와 같았다. 한 발자국, 절벽 쪽으로 몸을 물리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긴장한다. 이대로 네가 뛰어든다면 저는 정말로 괜찮을수가 없을 것이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정신을 바로 차릴 수 있는 건 어머니와 형이 있기 때문이었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형을 먼저 찾은 이유 또한 다르지 않아.
(저 또한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긴 어렵겠지. 형이 부모님을 죽인 상황에서조차 그의 범행을 모른 척 하고 싶다는게. 이유라도 알게 되면 이해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희망이라도 부여잡는게 우스웠다.)
내가 이해하면 안돼? 오만한 생각이라고 해도 감히 형을 이해해보려고 하는게...
 
킬리안:그런 너에게 내가 사라졌을 때, 네가 찾을 수 있는 남은 가족은…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말을 뱉다가 아차, 한다. 굳은 다짐이 내비치던 눈에 순간 흔들림이 일렁였다.)
...아냐, 아자릭. 이해해선 안 돼.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죽음은 뭐가 되겠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내 손에 묻혀 놓고 이해해 달라고 네게 안겨 울어도 된다는 말인가. 그런 기만이 또 어딨겠는가. 네게 어떻게 그런 짐을 지게 만들겠어. 그럼에도 저와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될 네가 마음이 쓰여서, 누구보다 외로워 본 저였기에 남겨질 네가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네가 나와 같은 아픔을 겪게 된다면, 난...)
그날 밤 불러내선 안 됐어. 그렇게 말을 걸어서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시도를 감히 내가 해선 안 됐어.
모든 게 잘못 된 거야. 내가 뒤틀린 것들을 고쳐보려고 마음 먹은 때 부터...
 
킬리안:(구토감이 올라오는 속을 겨우 삼켜낸다. 지난 밤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되짚어 봤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당신을 가족으로...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그런 용기를 내어도 괜찮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제가 너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지적 받았을 때 부터일까. 이어질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염려에서 감히, 라며 울컥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사람에게 주제넘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이후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분에 받쳐 누군가를 밀어 넘어뜨렸던 것도 같았다. 다급히 뻗었던 손, 끊어지던 목걸이, 누군가 쿵 하고 바닥에 부딪히던 소리... 문득, 남아있는 것만 같은 감각에 시선을 내려 제 손바닥을 바라봤다.)
 
아자릭:(도저히 네가 이유를 말해주지 않자, 괴로운 감정만 쌓여간다. 그렇다면 내가 원망해주길 바라는거야? 차라리 아니라면 아니라고. 맞다면 맞다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이어진 말은 저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음을 느끼고 고개를 절레 도리질 친다.)
형이 무슨 결심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나는 몰라.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해서 이유를 찾으려고 하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말라고 한다면 더이상 묻지 않을게. 그러니까...!
(이리와. 날 혼자 내버려 두지 마... 원망을 하더라도, 질책을 하더라도 너만은 살아있으면 했다. 지금을 놓친다면 자신은 이것보다 더한 후회를 할 것이라 강하게 예감한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남자가 저를 바라보지 않자, 안좋은 생각이 겹치고 겹쳐 불안함만 증폭된다. 사건의 진위는 점점 멀어지고 만다.)
(이대로 돌아가도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관계를 유지시키거나, 끊어내는 것 두 가지 선택 뿐이었다. 네가 제 곁에 있더라도 예전처럼 희망적인 소리를 하지 못하겠지. 서로가 서로의 족쇄가 되는 비정상적인 관계로 남아있을게 뻔한 결말이었다.)
 
킬리안:(외로워 보여.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한다. 절벽에 서 있는 것은 저임에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처럼 위태로워 보이는건 왜 너일까.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것은 역시 싫었다. 지난 밤, 네게 조금거렸던 진심이 다시 귓속에 맴도는 것 같다. '나도 네가 소중해, 아자릭. 네가 내 곁에서 행복했으면 해.' ...내가 그렇게 할게.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무겁게 했던, 무거워야만 했던 다짐.)
(너는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널 상처 입히고, 네게 매정하게 굴고 고함 치더라도 곁에 있어주겠다고 했다. 아니, 그러기를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네게 빌어야 하지 않을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있기를 허락해 달라고. 네가 나와 같은 외로움을 겪지 않도록 헌신할 기회를 달라고. 서로의 족쇄가 되는 비정상적인 관계가 될 지라도,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난...)
(뒤로 한 발짝만 더 내딛었더라면 파도 아래로 부서졌을 것이다. 그래, 아버지의 뒤를 따랐겠지. 귓가에 들리는 총성,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카락, 절벽 뒤로 사라지던 제 아버지의 몸과... ...총을 쥐고 있던 것은 제 손이었던가. 상념에서 깨어나 몸을 움직이면 발치에서 타닥, 하고 작은 돌맹이가 마찰하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늦게 깨달았다면 나는 영원히 너를 다시 보지 못했겠구나, 하고.)
아자릭, 난 네가 이 진실을 감당하게 되는게 무서워.
모든 것을 알고 나서도 내 곁에 있겠다고 말하는 그 자체로 네게 짐을 지어주는 거라서.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 거겠지? 가족이잖아. ...힘들 때 혼자 감당하지 않는 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되는게.
 
아자릭:(가족이잖아. 자신이 불과 하루 전에 네게 했던 말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왔던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을 다시 듣게 되는 때가 너를 가장 필요로 할때라니, 이게 무슨 운명일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가 바라는건 네가 제게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 뿐이었다. 당장의 상실을 이기지 못해 도피처를 찾듯이 너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달려나가 너를 제쪽으로 당기고 싶었으나 한 발자국이라도 섣부르게 움직인다면 네가 더 멀어질까봐. 두려운 마음에 두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돌아와.
나는 지금 형이 아니면 안돼. 이기적이라고 해도, 나는... 나는 더이상 안돼.
(목이 자꾸만 메어서 소리가 반쯤은 먹힌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네가 사라질까 쉽게 시선을 떼지도 못한다. 나중의 일은 앞으로 저와 네가 감당하게 되겠지. 유일의 무게는 그러했다. 서로를 위한 마음 하나 때문에 삶을 포기하기도,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네게 유일이었으면 했다. 자신 또한 그러했으니까.)
 
킬리안:(네가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네가 곁을 떠날 것이 두려웠다. 네가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의지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그러니까 나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두렵지 않았으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외롭지 않았으면… 다 내가 겪어본 것들이니까. 너만은 겪지 않았으면 하니까.)
(돌아오라는 말.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그래서 저는 망설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단서를 지우려면 얼마든지 지울 수 있었다. 평소 꼼꼼하던 제가 그런 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저를 찾아주었으면 해서. 네가 소중하다고, 곁에 있어 달라고. 어떤 이유에서 일어난 일이든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후회하지 않겠어?
(이미 발은 제 집을 찾아가듯, 이끌리듯 너를 향해 한 발자국 씩 내딛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묻는다. 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후회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가진 이타심을 버리고 제 이기심을 택하는 것을. 모든 걸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늦지 않은 걸까. )
(마지막으로 네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아자릭:(네가 혼자 남는 것이 걱정되어 저택에 남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언젠간 맞이했을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머무르던 너는 미래를 그리고 미래에는 언젠가 웃게될거라 믿던 저는 현실에 매어있게 되었다. 파도가 치는 소리에 네 말소리가 전혀 묻히지 않는건 그만큼 제가 너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건 내 최선이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없었다. 자신은 인간이니 당연히 후회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최선이라는 선택에 걸맞게 미래를 후회하기 보다는 너를 붙잡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한 발자국, 구두에 돌이 밟히는 소리가 들리면 손을 내민다. 마치 마중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네가 돌아올거라 믿는다. 차가운 바람이 손바닥을 차갑게 식히고 있으니 네가 얼른 와서 잡아주었으면 했다.)
 
킬리안:(한 발짝, 한 발짝. 이것이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듯 걸음 걸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의지를 굳힌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네게로 뻗어갔다. 가까워진 거리, 네게로 뻗은 손. 차갑게 식은 네 손을 마주 잡으니 그제서야 제 손도 싸늘히 식어 있었음을 눈치챘다. 괜찮다. 서로의 온기가 있으니 금방 제 온도를 되찾게 될 것이다.)
(언제 그리 멀리 있었냐는 듯 가까워진 거리감. 제 이마를 네 이마에 가볍게 맞대곤 작게 속삭인다. '후회해도 괜찮아. 그땐 나도 같이 후회 해줄 테니까.' 뭐든 나누면 낫지 않겠는가. 의지할 곳이 있다면, 기대서 울어도 되는 곳이 있다면…)
 
아자릭:(끝끝내 온기가 닿게 되면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꼭 잡는다. 이 온기가 한순간 사라질까, 그걸로는 부족한건지 다른 손으로 등을 감싸 안는다.)
(툭, 이마를 맞대고 작게나마 들리는 목소리가 안심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의 안온함에 더이상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살아갈 의미가 된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아둔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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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끌어 안습니다.
 
맞닿은 온기가,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죽은 것보다는 산 것이 소중합니다.
 
. 그렇게 외면하지만, 그를 잃은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
 
홀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이겠습니다.
 
하나뿐인 가족이잖아요, 제 곁에 남은.
 
품에서 킬리안이 작게 호흡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대로 돌아가도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관계를 유지시키거나, 끊어내는 것 두 가지 선택 뿐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제 곁에 있더라도 예전처럼 희망적인 소리는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족쇄가 되는 비정상적인 관계로 남아있을게 뻔한 결말이니까요.
 
...
 
그게 뭐 어떻겠습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고, 서로가 서로의 곁에서 행복하기를 바랬기 때문에 한 선택입니다.
 
어차피 우리와 같은 한낱 인간은 미래를 유추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 보다 지금의 현재에선 안도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
 
서로를 안았던 팔을 풀고 그가 당신의 손을 잡아 옵니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집에 가자.
 
그가 웃으며 속삭입니다.
 
그러면 당신도 마주 웃어줍니다.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지나가니 아침 해가 떠오르며 주변을 비춰옵니다.
 
구름은 언젠가 걷어지기 마련이니까요. 당연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우리는 운명을 바꿀 것입니다.
 
지독한 악연으로만 남지 않게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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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창 50: 17
 
 
죄악의 비망록
 
Credit
 
.END 1죄악의 비망록
 
.KPC생환
 
.PC생환
 
Cast
 
.KP킬리안
 
.PL아자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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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킬 이브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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